
배우는 수없는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현한다. 배우가 가슴속에 진실을 안고 연기한 것처럼 정치도 진실을 밑바탕에 깔아야 된다. 한국에서도 배우가 정치에 참여하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정치를 잘했냐, 잘못했냐가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해랑, 신영균, 신성일, 강부자, 이순재 등 많은 배우들이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유인촌은 장관까지 지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배우 김여진이 화제다. 그는 대학 등록금 인하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한나라당이 반값등록금을 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공약을 걸고 선거에 나와서 표를 얻은 다음 그걸 지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포퓰리즘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는 ‘전두환은 학살자’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벌금이 무서워 상상력을 제한당해선 안되겠기에. 쥐20 포스터 그림 티셔츠를 제작 판매, 벌금을 함께 내자”는 글을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으로 눈을 돌려 ‘극렬 운동권 투사’이기도 했다. 그는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인지도를 정치적 발언으로 문성근, 명계남, 김제동, 김미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는 최무룡이며 어머니는 강효실이다. 외할머니 전옥도 20연대 유명한 배우이다. 최무룡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그리고 최민수의 외할아버지 강홍식은 북한에서 배우 겸 감독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병으로 1971년에 사망하였다. 1949년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 '내 고향'을 연출했고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인 '최학신 일가'에서 '리처드 목사'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배우 김을동은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당선, 국회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다. 그는 김좌진 장군 생가를 복원했으며, 중국에 한중우의공원을 세워 조선족의 교육에 힘쓰셨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해마다 대학생들과 함께 청산리 역사 대장정을 출정하고 있다. 현재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배우 문성근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문익환 목사의 아들, TV프로그램 진행자, 지식인 배우, 노사모 회원, 사회 참여 연예인 등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32살에 데뷔한 늦깎이 배우다. 그는 노사모 활동을 한 건 민주정부가 재창출 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요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진행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인촌 장관 시절, 최종원 민주당 의원과 날선 입씨름은 지금도 화제이다. 유인촌은 1951년생으로 1971년 연극 <오델로>로 연기를 시작했고, 1950년생인 최 의원은 1970년 연극 <콜렉터>로 데뷔했다. ‘연기자 유인촌’을 좋아했던 국민들도 ‘장관 유인촌’에 대해서는 실망했다고 말한다. 이창동·김명곤은 장관을 지냈지만 그나마 틀에 박힌 관료 체계를 고치려고 노력했고, 선·후배들의 고언을 잘 받아들여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에서도 영화배우들이 부시의 정책을 소재로 한 연극을 공연, 관심을 끌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팀 로빈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각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 퍼블릭 시어터에서 각기 다른 작품이지만, 비슷한 소재의 공연을 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오랫동안 정치문제에 관심이 높았다. 정치풍자영화와 연극들을 여러 차례 발표했던 로빈스는 반전 시위에 참여해왔다. 호프먼은 2000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파티는 끝났다>(The Party’s Over)를 뉴욕과 LA에 개봉하기도 했다. 물론 대통령을 지낸 레리건도 배우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