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은 어디를 가도 초록세상이다. 신록의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5월을 찬미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신록처럼 싱그럽고 꽃처럼 아름답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 같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처럼 이름을 부르면 한 그루 나무로 걸어오고, 사랑해 주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 같은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볼 때마다 교직의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들이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 불린다. 아이들은 어린이날을 기다리고 어버이들은 어버이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교사들은 스승의 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린이가 있는 집은 어린이 날 하루만큼은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버이날은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부모님께 정성을 다한다.
스승의 날은 어떤가? 스승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날인데도 불구하고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매스컴에서는 스승의 은혜나 고마움에 대한 언급보다는 마치 교사집단이 부정부패에 물든 것처럼 떠든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를 기리자는 말보다는 교육의 부패, 교사의 부정을 들추어내며 교사들을 수치스럽게 했다. 더 나아가서는 체벌금지로 교사의 교수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했다. 심지어 촌지근절을 외치며 교사와 학부모, 제자간의 정(情)마저 오고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스승의 날을 휴업일로 정해서 이런저런 구설수를 피하려 한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까. 올해는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스승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책상위에 감사의 꽃 한송이나 편지 한 장이 없다면 그 책임은 교사에게도 있다. 교사와 학생사이에 정이 없는 교육을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제자간의 정이 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나 다름없다. 교육은 지식의 전수도 중요하지만 사람됨을 가르치고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고, 어버이날은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듯이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그런 날이 되어야 한다. 그 날 하루만이라도 학생은 선생님의 고마움에 감사할 줄 알고, 선생님은 교직을 선택한 것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더 큰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동안 일부 교사들이 교육계를 부끄럽게 만든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바른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오늘 날 교사들은 업무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교권추락으로 인한 교원의 사기저하, 일관성 없고 비현실적인 교육정책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자리에서 전인교육을 위해 소명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을 전해주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수업현장에서도 많은 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다보면 교사의 적극적인 행동 통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수업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그 수업은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은 공교육을 무너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올해 한국 교원단체 총연합회장 안양옥은 교육 3주체(학생, 교사, 학부모) 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과 정서적 유대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부모가 갖는 학생 통제 권한을 교사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필자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교사의 학생통제권이 없는 교실은 인성교육이 없는 교실을 불러오고 최악의 경우 난장판교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교실상황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수업에 태만한 학생이 있어도 교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학생개개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학습권, 교사의 교수권(敎授權)도 존중되어야 할 중요한 권리이다. 교실에서 교사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모두 존중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선 필요하다.
교사들도 스스로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하여 스스로 교사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키우는 전문가라는 자긍심으로 무장하여야 할 것이다. 학생과 교감하고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故)김수환 추기경님은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라고 했다. 그 분이 말씀한 ‘바보’라는 두 글자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겸손이 포함되었다. 교사들도
지금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이 나라의 초록꿈나무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바보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자들에게 열정과 사랑을 다 내어주고 그들과 헤어질 때 그들로 부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없을 지라도 ‘나는 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바보 스승 말이다.
헨리 반다이크의 무명교사 예찬에서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 마차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아도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라는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격려할 일이다.
해안초등학교 교감 김 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