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법과 술의 힘겨루기에서 법이 술을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들고 냉전시대를 종식시킨 ‘고르바쵸프’도 러시아인들의 음주문화에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가 아니고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지 않으면 술이 아니라는 러시아인들에게 금주령이나 다름없는 술 판매시간제한조치를 내렸으니 그 여파가 어떠했겠는가.
이 조치가 발표되자 옛 소련에서는 ‘고르바쵸프’ 물러가라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결국 ‘고르바쵸프’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 국민들의 퇴진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형편에 술 판매시간제한조치로 술 판매량이 줄어들었고 그 것이 곧 주세의 감소로 이어져 국가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고르바쵸프’는 술과 연계된 돈 문제로 백기를 든 것이다. 술의 힘을 빗댄 이야기지만 그럴싸하게 들린다.
1920년 제1차 세계대전 때 제정된 미국의 금주법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데 술을 마실 수 있느냐는 게 여성단체의 주장이었다. 이 주장이 여론을 압도하여 금주 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금주법이 제정되고 2년도 채 안돼서 밀주가 판을 쳤다.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알카포네’가 암흑가를 주름잡으면서 술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밀주로 인한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뉴욕의 1만5천개였던 술집은 3만2천개로 불어났고 취중운전도 7년 사이에 다섯 배나 증가했다.
음주로 인한 피해 보다 금주법제정 후에 일어난 폐해가 더 컸다. 결국 이 법은 폐기되고 말았다. 7년간 존속했던 이 법을 만드는 대는 한달도 걸리지 않았지만 법의 폐해를 알고 폐기하는 대는 6년이나 걸렸다. ‘고르바쵸프’의 술 판매 제한조치와 미국의 금주 법은 법과 술의 힘겨루기에서 법이 무릎을 꿇은 사례다.
조선시대에도 금주령을 발동하여 술을 다스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영조시대에는 금주령이 내려진 후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어제계주윤음’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금주의 당위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순조 때는 금주령을 실행하기 어려우니 화주(火酒)에만 국한하자는 상소를 올렸다가 형조판서가 파면되기도 했다. 이렇듯 법과 술의 힘겨루기는 번번이 술이 판정승으로 귀결되었다.
이 힘겨루기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단속이다. 요즘의 힘겨루기는 법이먼저 선전포고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주운전을 단속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선전포고를 들으면서도 음주운전을 한다. 일전을 불사하겠는 각오로 덤비는 술의 만용이다. 혹여 술이 법을 이겼던 역사 속의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닐까.
날씨마저 쌉쌀한 세밑의 밤 11시, 도심의 전광판엔 음주운전단속 ‘시그널’이 명멸하고 경찰이 편도 3차선 도로를 막아서서 음주운전단속을 하고 있다. 빨간 유도등을 든 경찰관이 손을 몇 번 씩 귓불로 가져간다. 경찰관도 추운 모양이다.
운전자와 단속경찰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단속의 그물은 촘촘한데 음주운전은 여전하다고 경찰의 고개를 흔든다. 술을 마시고 권하는 횟수가 잦은 게 세밑의 사회분위기다. ‘한두 잔 쯤이야’ 이런 식으로 술을 권한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언제나 관대하다. 이 관대함이 술이 법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법은 이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단속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해 놓고 있다. 법이 술 앞에 무릎을 꿇었던 시대는 갔다. 이제 법과 술의 힘겨루기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