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있는 곳
희망이 있는 곳
  • 김종현
  • 승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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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는 있지만 나아가지 않는 제자리 걸음.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쩌면 제자리 걸음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 아닌가. 그래서 계속 전진만 하다가 잠시 멈추어 과거와 미래를 숙고해보는 제자리 걸음이 과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자리 걸음이 너무 길다면 곤란하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단체장들이 치적을 쌓기 위해 2~3년 앞도 내다보지 않고 벌이는 사업도 문제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도 시민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언론이 행정을 비판하고 시민들이 행정의 예산낭비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발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제주매일에서 서귀포 휴양림의 문제점을 보도한 이후 서귀포시는 부서진 데크를 고치고 야영장에 만들어진 애기 무덤도 잘 보이지 않게 가리는 등 많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휴양림 야영장을 찾은 사람들이 달라진 휴양림에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휴양림 책임자를 5급으로 상향하고 인력 충원도 할 필요가 있어 다음 인력 구조개편시에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텐트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최근의 추세에 맞춰 대형 데크를 설치하는 것은 예산 문제로 당장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공무원이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희망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인 곳도 있다. 서귀포의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서복 전시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아갈 줄을 모른다. 지난해 서복 전시관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민간위탁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올해는 민간 위탁이 없던 일이 됐다. 겨우 기념품 판매장 한 곳 정도만 업자를 구한다고 한다. 더욱이 적자를 줄인다며 관리 인원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여 서복관련 귀중한 사료들이 도난당할지도 모르는 지경이 됐다. 서귀포시 담당 직원은 “동사무소도 모두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서복 전시관에 별 일 있겠냐”며 동사무소와 서복 전시관을 같은 시설로 여겼다. 문화가 어쩌구, 전통이 어쩌구, 관에서 내세우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모두 컴퓨터 하드에 보관된 심심하면 클릭해서 써먹는 낡은 자료에 불과하다.
외지인들에게, 특히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에게 엄청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서복을 수십년동안 방치한 것도 모자라 담당 직원이 단 2명뿐인 시설로 전락시키는 발상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정작 살아있는 스토리는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수십년동안 서복을 연구하며 중국과 일본의 서복관련 관광상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복협회는 맡겨만 주면 서귀포시 서복 전시관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 자신이 넘쳐난다. 중국과 일본의 서복협회에서 서복관련 과자, 술, 기념품을 기술 제휴해 상품을 개발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스토리 텔링 자료를 전수받을 수도 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서복협회가 위탁을 희망하고 있지만 “그들이 잘 한다는 보장이 없어 맡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 2명이 관리하면서 산책로나 정비하면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말인가. 서귀포에 만들어질 신화역사공원이란 다름아닌 서복 공원이다. 전시관을 넘어서는 역사 유물을 갖고도 단순히 ‘전시관’이라는 자기비하 같은 이름을 붙인 서귀포시. 곧 한중일 합작으로 서복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서복전시관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2명의 관리인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하니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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