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레벤 운트 레벤 라센’
[세평시평] ‘레벤 운트 레벤 라센’
  • 김관후
  • 승인 201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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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더불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양대 기구다. NCCK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진보적 단체인 반면, 한기총은 보수 우파를 대변한다. 한기총에는 69개 교단과 19개의 단체가 가입돼 있다.

그런데 교회 안팎에서 한기총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 대표회장 선거에서 금권선거가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한기총 해체하고 새로운 연합기구 창립해 달라”는 소리가 드높기 시작하면서, 지난 3월 28일 법원이 나서서 길자연 대표회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2010년 12월 21일 한기총 실행위원회에서 대표회장 후보로 길자연 목사가 당선됐다. 이어 2011년 1월 20일에 소집된 정기총회에서 대표회장 인준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대표회장 당선자의 선거과정에서의 불법선거운동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법원의 중재로 김용호 변호사가 회장 직무대행을 맡는 사태가지 벌어졌다.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의 문제가 어디 그 뿐인가? “일본 지진은 하나님의 경고” “청와대 1km 반경을 18세 이하 미성년자 출입을 금하는 우범지대로 설정하라” “정부에 항의하는 불교계 의지를 쓰나미처럼 보여줘야” 등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독일에서는 종교 사이의 평화를 상징하는 ‘레벤 운트 레벤 라센(Leben und leben lasse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살고 (그대로) 살게 하다’ 이다. 정치와 종교를 떠나 최소한의 공존을 위한다는 뜻이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뒤 500년이 흐른 지금, 독일 국민들은 매년 소득세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이른바 ‘종교세’를 내고 있다. 인구 8200만 명 중 65%가 가톨릭이나 개신교인 루터교회 신자다.

독일에서 성당이나 교회에 가는 신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종교세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다. 종교세는 각 지역의 성당이나 교회 등에 배분한다. 성직자들은 개인의 의사와 지역 사정에 따라 순환 형식으로 근무한다. 우리나라처럼 대형교회나 교회의 세습, 개척교회 같은 단어는 생소하다. 우리 교회가 언제면 빈부격차를 떠난 공정한 목회가 기능할까?

길지 않은 한국 교회사에는 선교와 박해, 부흥과 해외선교, 분열과 대형화, 세속정권과 교회권력의 결탁과 타락 등 서구 기독교 2000여 년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유일하게 경험하지 못한 것은 뼈를 깎는 종교개혁이다. 지금은 개신교가 다시 살아야 하는 종교개혁의 전야(前夜)다. 어느 대학교수의 진단처럼, 1989년 출범 이후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해온 한기총이 법원에 의해 초유의 대표회장 직무 정지를 당하는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까? 한기총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한기총의 갈등 격화로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한기총은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서로 소송을 하고 싸우고 있는데 누가 누구를 개혁한다는 것인가? 한기총은 그동안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해체가 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 묻어 두었던 다른 비리들도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리는 마땅히 문제 삼아야 하며 비리를 들춰내는 게 기독교다운 행동이다.

한기총은 전혀 성서적이고 기독교적인 조직이 아니다. 마치 대기업들이 모여서 그 힘으로 곳곳에 압력을 가하고 자리싸움이나 하는 세상조직과 같다. 한기총은 최근 불법적 금권선거 등으로 시민사회와 교회 간 관계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대형교회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이런 특권화 된 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사회 일부에서는 종교를 부패한 조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느님 나라가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누룩의 비유에서도 나타난다(마태 13,33). 예수님은 신앙인의 믿음에 대해서도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한기총이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으로 돌아기가 바란다.

소설가 김  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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