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맹자(孟子)의 행복조건
[세평시평] 맹자(孟子)의 행복조건
  • 김찬집
  • 승인 2011.0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맹자의 행복조건은 맹자를 현대적의미로 해설한 맹자철학 (양조한지음, 황갑연 역, 서광사 출판) 제2부 수양론편에 나오는 말이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고 맹자(孟子)는 말했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선비는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다고 단언했다.
맹자의 항산이란 말을 행복의 조건이란 말로 바꾸고, 항심이란 행복이란 말로 옮겨 놓아도 별로 의미에 큰 차이에 없을 것이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선비는 행복의 조건을 못 갖추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맹자의 행복논리는 행복의 조건이 행복의 객관적(客觀的) 요소(要素)라고 한다면, 행복감은 행복의 주관적(主觀的) 요소라고 보고 있으며. 행복은 이 두 가지 요소의 종합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면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또 행복해질 만한 조건은 별로 갖추지 못하면서도 행복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맹자의 표현을 빌려서 말한다면, 항산이 없더라도 항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 조건이 안 되어도 행복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요컨대 마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핵심일까?
나는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말을 언제나 연상한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행복하고 악한 사람이 불행한 것을 볼 때 그것이 당연한 인생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악한 사람이 행복하고 착한 사람이 불행한 것을 볼 때 그것은 삶의 부당한 질서라고 생각한다. 어딘지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양심(良心)의 요구다. 착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자연이요, 또 필연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또 삶에 대해서도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이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악한 사람만이 행복을 누리고 착한 사람모두가 불행해진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옥이고, 저주받은 사회다.
며 칠 전 스포츠신문에서 만화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이 와서 날마다 대리석을 조각한다.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 즉,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다르다. 첫째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에 불평  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죽지 못해서 이놈의 일을 합니다." 하고 대답한다.
둘째 사람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돈 벌려고 이 일을 합니다."
셋째 사람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대답한 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만화의 상징적 의미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마음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안경의 빛깔이 검고 흐린 사람도 맑고 깨끗한 사람도 있다. 검은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느냐? 푸른 안경을 통해서 인생을 내다보느냐? 그것은 마음에 달린 문제다. 불평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내다보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모두 불만투성이요, 감사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인생은 축복(祝福)이다.
똑같은 달을 바라보면서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혹은 슬프게 혹은 정답게 혹은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쓰면서 살 수 뿐이 없으며, 또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이상, 누구든지 먹고 살기 위한 의식주(衣食住)와 처자와 명성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돈 건강 가정 명성 쾌락 등은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떠나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곧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다는 것과 행복의 조건을 갖는다는 것과는 엄연히 구별해야 할 별개의 문제다. 집은 지으려면 돌과 나무와 흙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갖추었다고 곧 집이 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 논리다.
행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감을 떠나서 행복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성이 높고 좋은 가정을 갖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맹자의 행복조건도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의미를 항산, 항심으로 표현만 유학(儒學)적 의미로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본다면 몇 천 년 전 춘추전국시대 사람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마음만은 다를 수가 없다고 생각해본다.

수필가 김 찬 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