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몇이서 일탈을 꿈꾸며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우아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입속 청소를 하려고 했더니 치약이 없어 식당에 내려가 소금을 조금 얻어왔다. 굵은 주방 소금을 잘게 갈아 짭짤한 맛을 즐기며 일을 끝냈다. 뒷맛이 개운하다. 치약이 귀하던 어린 날에 소금을 사용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소금이 흔해져서 홀대 받기 시작한 것은 근세의 일이다. 무엇이든 많아지면 가치가 떨어져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세계사에서 중세까지는 소금이 귀중한 교역의 일등 품목이었다고 한다, 소금이 국운을 좌우하던 시대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한참 인기를 끌던 사극 <주몽>에서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금의 가치가 새삼스러웠다.
지난 동구라파 여행길에 폴란드의 소금광산을 보았다. 그 어마어마한 작업 현장에 놀랐다.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마크 클린스키의 저 <소금 세계사를 바꾸다 >에는 재미있는 소금 이야기로 가득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의 봉급을 소금으로 지급하고 지중해 국가들이 소금을 화폐로 썼다고 한다. 소금의 부패방지 기능을 이용하여 비로소 치즈와 햄과 베이컨을 만든 인류는 먼 곳으로 여행하며 교역을 했고 지배층은 소금 유통을 통제함으로서 권력과 돈을 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도 만리장성을 쌓는 비용을 소금에서 충당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에는 소금에 과도한 세금을 붙인 탓에 백성들의 소금 밀수가 성행하여 매년 삼천여명이 채포되고 사형까지 당했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 일들이 역사를 장식하고 있었다.
소금의 본성은 따뜻하고 그 속의 미네랄은 골격과 체액의 균형을 유지하는 효능을 지녔다고 한다. 발효나 절임음식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소금섭취가 한계치를 넘는다는 지적이 있고 어떤 질병에는 소금을 금기시하기도 하지만 목숨 있는 모든 것이 소금을 필요로 한다. 동물은 물론 식물에도 소금기가 있다. 높은 산에서 사는 산양들이 해안가에 내려오는 이유는 바닷물이 파도쳐 바위에 말라 있는 소금을 핥기 위해서이다. 맹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려와 생명을 걸고 소금을 먹어야만 하는 그들의 절박함이 안쓰럽게 보였다.
소금의 쓰임새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도자기의 광택을 내고, 염색의 촉매제나 폭약제조에도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유시화의 소금이란 시를 읽었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소금이 바다의 상처며, 아픔이며, 눈물 이라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소금채취가 어쩌면 바다를 상처 내는 일일까. 소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예술적 감각으로 형상화 해낸
시인의 예지가 놀랍다.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비단 소금만은 아니지만 바다를 모성으로 인식하여 아픔과 눈물로 보내준 소금을 떠 올려 본다. 소리 없이 녹아, 생존하는 모든 곳에 도움이 되라 당부했을 바다의 사랑이, 파도소리에 섞여 들리는 듯하다.
빛과 소금은 소재가 전혀 다르고 그 기능조차 근접이 안 되는데도 자기소멸이라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사람이 만든 모든 빛은 에너지의 소진이 따른다, 소금 역시 그 기능을 다하려면 녹아서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소금이 소금으로 보존 되는 동안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 녹아서 제 모습이 스러질 때, 세상의 모든 식탁에서 맛을 내고, 모든 필요한 곳에 스미어 그 대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세균의 번식을 차단하여 부패를 방지한다. 그리하여, 빛과 소금이란 두 낱말은, 희생과 헌신의 표상이 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는 가르침은 헌신과 희생의 요청이다. 그 쉽지 않은 사명에 순응하여 기꺼이 목숨을 다하는 사람들 덕으로 세상은 살만한 여지를 남기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무지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스며들어 오만을 절이고, 부패를 막으며 맛을 내는 소금으로 사는, 그들이 있음으로 하여.
수필가 공 옥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