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면서 ‘새해 복(福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을 많이 주고받았다. 자주 들어서 식상할 만도 한데 새해 초에 듣는 그 말은 자주 들어도 싫지 않다.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진정어린 마음으로 하고 그만큼 듣는 사람도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걸어 놓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복을 기원하는 소망지(所望紙)를 태우며 복을 소망한다.
그러면 복(福)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이라고 쓰여 있다. 결국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은 ‘새해에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들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말이다. 과연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이란 어떤 것을 말할까?
똑같은 조건과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을, 어떤 사람은 불행을 느낀다. 사람마다 만족의 척도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보다도 그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남편은 아내의 작은 친절에도 마음이 흡족해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늘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시험점수를 똑 같이 80점을 맞았는데 어떤 학생은 울고 어떤 학생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이처럼 만족은 우리 마음의 잣대가 이래저래 움직이기 때문에 기준이 없다. 그러다 보니 복(福)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좋고 만족할 만한 일들은 결국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면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복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유교에서는 오복(五福.『서경』 홍범 편에 나온 다섯 가지의 복)으로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하였다. 수(壽)는 말 그대로 오래오래 장수(長壽)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시대라 장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두 번째의 부(富)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시 되고 있다. 세 번째 강녕(康寧)은 제일 우선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네 가지 복이 다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다스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복된 삶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남에게 베풀고 이웃과 나누는 삶이라야 복된 삶이다. 고종명(考終命)은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고 고통 없이 죽음을 맞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복을 말할 때는 인복, 자식복, 남편복, 재물복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런 복들이야 말로 오복 못지않은 우리들이 소망하는 복들이다. 또 하나 일복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 어디를 가도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복이 많다고 하는데, 흔히 긎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하기에 부지런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복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태도가 적극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야 일복도 주어진다.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이 있어야 하기에 어찌 보면 일복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복인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설령 그 일이 보수가 따르지 않는 자원봉사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면 그게 바로 나누는 삶이 되는 것이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든지 부지런히 하다 보면 재물도 생기고 인복(人福)도 함께 온다. 너일 내일 가리지 않고 서로 돕는 사람은 그를 도우려는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복은 누가 나에게 던져주거나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복은 어떤 때는 불행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삶의 초점을 긍정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전화위복’,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도 며칠 전 순간적인 실수로 가스가 새어나온 곳에서 성냥불을 그었다가 큰 화상을 입을 뻔 한 일이 있었는데, 머리카락도 타고 손등에 화상은 입었지만 얼굴에 화상을 입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감사함이 더 컸다. 탄 흔적의 머리카락과 손등의 화상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감사하여 마음이 흡족할 따름이다. 이렇듯 삶에서 누리는 복은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마음 안에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 대신에 ‘복 많이 만드십시오.’라고 바꾸어 말하면 어떨까?
해안분교장 김 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