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파리 불법체류기…240일간의 여정 청춘의 언어로 표현/오밀조밀한 극적 에피소드로 소설같은 ‘맛’전해
‘그들은 왜 파리로 갔을까(문신기(글ㆍ그림) 이다혜(사진))’ 88만원 세대의 자발적 파리 불법 체류기, 슬프지만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의 언어들로 가득찬 책이다.
그들은 정말 왜 어떤 이유로 프랑스 파리로 갔을까.
2000년대 후반의 어느 늦겨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청춘 남녀는 인생의 모든 서정을 쏙 빼버리고 그들 세대를 단돈 ‘88만원’으로 치환해버리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났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관용과 예술의 도시에 대한 로망. ‘나의 그림’을 향한 의지, 그리고 6개월 동안 최저 임금을 받으며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여 모은 피 같은 돈이 전부였다.
이 책의 저자인 문신기씨와 부록원고와 사진을 맡은 이다혜씨는 “파리 갈래”“그래 가지 뭐”라는 별다른 고민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240일간의 파리여정을 시작했다.
그들의 ‘떠남’은 유학도 어학연수도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이 책 본문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린 문신기씨의 고백대로, 스펙을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한 것이 없다. 아틀리에에 다니며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고, 물 만난 고기처럼 미술관을 헤집고 다녔다. 에펠탑이 보이는 다락방에서 책을 읽었고, 프랑스, 일본, 이집트, 네덜란드, 인도의 청춘들과 파리와 예술과 삶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밤에는 선술집 따바(tabac)에서 파리지엔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난 후 자발적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그들은 8개월 동안 단기 월세 다락방을 전전하며 여섯 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만큼 생활이 힘들고 고단했지만, 지은이는 파리에서의 240일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마음껏 그림을 그렸고, 치열하게 사유했으며, 꿈과 의지대로 살고자 열정적으로 ‘자기 혁명’을 했으므로.
두 젊은이의 파리 체류는 ‘다른’ 여행이었고, ‘대안’ 여행이었다. 그들은 여행자였지만 관광객이 되는 것은 끝끝내 거부했다. 대신 두 젊은이는 있는 힘을 다해 파리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유가 넘치는 소르본과 에콜 드 보자르에서 질투를 느끼고, 파리지앵과 어울리며 관용과 존중의 미덕을 배웠다. 루브르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위대함과 약탈의 욕망을 동시에 보았다.
소설처럼 극적이다. 단지 소설이 아닐 뿐이다.
‘그들은 왜 파리로 갔을까’는 관절염 같은 청춘을 보낸 두 젊은이의 아픈 기록이다. 그러나 번뜩이는 유머와 신세대 특유의 발랄한 감성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전혀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슬픈데 재미있고, 긴장감이 흐르는데 유쾌하다. 게다가 240일 동안 경험한 여러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때로는 전면에, 때로는 배경처럼 등장하고 있어서 영화나 소설처럼 극적으로 읽힌다. 특히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겪어야 했던 몇몇 사건들, 이를테면 독일 국경을 넘다가 검문을 당하는 장면,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심하게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장면은 극적인 긴장감이 영화나 소설에 뒤지지 않는다. 또 단골 선술집에서 파리에 거주하는 이모 친구를 우연히 만나 눈물 콧물 쏟으며 감격해 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문신기
=1981년 제주도 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서귀포에서 자랐다. 건국대 회화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8년 삼성생명 디지털파인아트대회에서 금상을, 독일의 온라인 매거진 ‘Art Iiterview’에서 주최한 ‘International Online Artist Competition’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현재까지 서울과 제주도에서 두 번의 개인전과 여러 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 책의 본문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렸다.
▲이다혜
=건국대 회화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4년 봄 문신기를 만났다. 2004년에는 인도를, 그 이듬해엔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다. 2006년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하여 모은 돈으로 8개월 동안 파리에 체류하며 아틀리에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2009년 겨울 타이의 국경 도시 매솟에서 미얀마의 어린이 난민을 위해 아트 워크샵 진행자로 봉사 활동을 했다. 2010년 겨울 다시 타이로 떠나 현재까지 매솟(Mae Sot)의 엔지오 단체 PPDD에서 아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의 사진을 찍고, 부록 원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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