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잊지 못할 연극 한편
[기고] 잊지 못할 연극 한편
  • 오현택
  • 승인 2011.0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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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제주방어사령부 정보통신대(이하 정통대) 대원들의 긴급회의가 있었다. 설날을 맞이하여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오던 제주요양원에서 특별한 공연을 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연극’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연극을 통해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자는 것이었다.
15명의 인원 중, 연극을 본 경험이 있는 인원은 단 세 명. 행사 기획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나 혼자여서 총 감독의 직책을 덜컥 얻게 되었다. 막내나 다름없는 내가 감독을 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했다.
가장 급한 것은 대본. 관객 4분의 3 이상이 치매노인이며, 배우들은 연극을 처음 접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본을 만들어야 했다. 3일 동안 조감독과 머리를 싸매며 대본을 찾은 결과 ‘팥죽할멈과 호랑이’라는 전래동화를 다룬 연극을 선정했다.
어르신들을 위한 연극이라 말로써 전달하는 것보다는 소품, 분장, 의상, 조명과 같은 언어 외적인 부분을 강화하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제주노인전문보호기관’에서 조명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지게와 멍석을 빌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머리를 맞댄 결과 훌륭한 소품과 의상이 하나씩 탄생했다.
당직업무가 많은 우리부서의 특성상 연습일정을 짜는 것이 쉽지 않았다. 틈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역할을 익혀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설 연휴를 모두 반납하여 하루 종일 맹연습을 한 결과 완성도가 조금씩 높아져갔다.
드디어 연습의 결과를 확인받는 공연날. 떨리는 목소리로 무대 인사를 하고 우리들의 연극은 시작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모자란 연습, 실전이라는 긴장감이 우리를 압박하였지만, 긴장을 풀어준 것은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였다.
문득 어느 배우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것은 배우가 아닌 관객이다.” 이 공연은 우리의 무대가 아니고 어르신들의 무대이다. 비록 한없이 부족한 공연이었지만 너무나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신 것이다. 짧지만 깊은 호흡으로 성공적인 연극을 마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였을 때 진정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극의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의 보물섬 제주도를 지킨다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또한 제주도민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는 해군으로서 나는 오늘도 자부심을 느낀다.  

해군제주방어사령부 정보통신대 일병 오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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