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짐, 부모에 짐’
‘자식에 짐, 부모에 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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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해체되는 세상이다. 전통적 대가족제도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서히 균열을 가져오더니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 급속한 해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손자와 손녀들 삼대가 한 지붕아래 살면서 화롯불처럼 따뜻한 가족애를 나누던 모습은 TV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어 버렸다. 핵가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젊은 부부는 직장을 가지기 때문에 한 두명의 아이들만 낳고 물애기 때는 돈주고 애를 돌보는 곤욕을 껶어야 한다. 조금 크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부부는 따로 살거나 시골에 계시기 십상이다. 이러한 가족 해체의 서글픈 세태는 결국 ‘자식에 짐, 부모에 짐’ 이 되는 서글픈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세밑에 보도된 두가지 사연은 이를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슬픈 사연. 팔순노인이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며 부인을 살해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이 가슴을 울린다. 아버지는 아들방 책상위에 ‘너희들이 하루도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날 그날 잘해준 덕에 잘 지내왔다.

우리 두 사람은 이젠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희들 어머니는 내가 모시고 가야 할 것 같다. 형제들 우애 있게 잘 살고 용서하라’. 고 쓰인 유서와 함께 장례비로 써달라는 현금 2백만원이 놓여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부모에 짐되기 싫다는 애 끓은 사연은 이렇다. 자식 도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관해 오던 30대 큰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아버지는 경찰에서 “아들이 있는 작은 방의 문이 잠겨 있어 열쇠로 열어 보니 아들이 붙박이장에 넥타이로 목을 매고 숨져 있었다” 고 말했다 한다. 아들은 “자식 도리를 잘못하고 있어 미안하다.

 특히 장손과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가족을 볼 면목이 없다” 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단다. 부모님의 내리사랑과 자식의 효심을 만발하게 피우지 못한채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례이다.

  부모들의 눈시울을 적신 드라마도 있었다. 얼마전 방영된 모 방속국의 ‘홍 소장의 가을’ 이 그 드라마다. 한 장면을 보자. 결혼식 때 들어온 축의금을 나눠 달라고 보채는 자녀들에게 어질고 착한 엄마는 단호히 이렇게 말한다. “나 돈 안 줄래. 전부 다 내 돈 할거야. 나도 통장에 돈 좀 가져 보자.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면 안돼. 다들 공부시켜서 짝 채워 줬으면 됐지 더 뭘바래. 순 싸가지 들이라니까.”

이 드라마 대사가 남다른 감동을 준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부모들의 심사를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 시간에도 부모님들에게 효성은 커녕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자식들, 늙으신 부모님을 서로가 모시지 않겠다고 형제간에 갈등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집에 지붕이 덮혀 있어서 안보일 뿐이지, 별난 사연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한 가지만 잘해도 감지덕지 한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한 가지만 잘 못해도 불평을 쏟아낸다. 부모는 찬밥먹고 자식은 더운밥 먹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들 눈치보며 사는 사회가 참으로 제대로 된 일일까?

 서양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惡性)보험은 자식’ 이라는 말이 있다. 반론이 일어날까 겁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악성 부채는 늙으신 부모’ 라고. ‘불효자는 웁니다’ 는 흘러간 옛 노래가 오늘도 널리 불려지면 좋을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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