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의 흔적을 찾아라”
“서복의 흔적을 찾아라”
  • 고안석
  • 승인 201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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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 암벽 서불과지 체계적인 조사 실시/정밀 3차원 스케닝 조사와 문헌 및 학술조사 병행 추진
서복의 흔적을 찾는 정방폭포 암벽 서불과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실시된다.
이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 및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서복(徐福) 전설에 따르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현재 한라산)에 불로초를 캐기 위해 진나라 시황이 보낸 사신일행이 제주도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서복 일행이 영주산을 찾아올 때 처음 조천포로 도착해 서귀포로 이동한 후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過之)’라는 마애명(磨崖銘)을 새겨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 ‘서귀포’라는 지명이 유래될 정도로 서복은 서귀포에 미친 문화적 영향이 매우 컷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방폭포의 서불과지 각자는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 현재 확인되는 사항은 없다.
서복의 각자(刻字)는 경남 남해도, 일본 나가사끼 이끼시의 우성석실(牛城石室), 치구코의 마야타무라석실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바 있어 서불과지에 대한 정방폭포 마애명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또한 서복이 구해갔다는 불로초는 여러 이설들이 나오고 있는데, 중국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황칠나무를 불로초로 보는 예, 갈홍(葛洪)이 쓴 도교서인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청운지(靑雲芝)로 보는 예, 영지버섯을 별칭하는 등 이설이 다양하게 전해진다.
1990년대 초반 서귀포시는 서복에 대한 암벽 표본조사를 실시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그 후 정방폭포와 서복을 주제로 서복전시관을 건립했지만 서복에 대한 정확한 고증자료 가 없다보니 전시물 및 스토리텔링을 구성할 수 있는 자료가 빈약한 게 현실.
도는 급속하게 밀려들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 및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스토리텔링 구성과 구체적 실증자료를 통한 실증성을 제공하기 위해 서불과지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내용은 정방폭포의 암벽 270m 구간에 대한 정밀 3차원 스케닝 조사와 낙석에 대한 확인조사는 물론 서복의 이동경로, 불로초의 개념 규명 등 문헌조사, 구전에 대한 학술조사까지 병행하게 된다.
이 조사는 3월부터 자체적 문헌자료 수집 등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정방폭포(명승43호)에 대한 현상변경허가 절차 이행 등을 거쳐 식생 휴면시기를 적절히 조절해 조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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