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겨울 배추 국
[세평시평] 겨울 배추 국
  • 공옥자
  • 승인 201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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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맛은 어릴 적에 길들여지는 탓인지 아무리 좋은 음식도 한두 번 먹고 나면 어머니 손맛이 배인 토속음식으로 돌아오곤 한다.
주마간산 식으로 여러 나라를 보고 그 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얼 먹는지 대충은 알게 되었지만 별로 이렇다할만 한 요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1519년 34세의 김정국(1485-1541)이란 선비는 기묘사화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낙향하여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 라 불렀다. 팔여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말인지라 녹봉도 끊긴 처지인데 팔여라니? 하고 궁금하여 친구가 묻자 그가 웃으며 말하기를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팔여’라 했네.         
실의에 잠기고도 남을 상황에서 스스로 유유자적 했던 선비의 모습이 두세기를 건너서 살고 있는 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이 선비도 먹는 일을 처음에 언급했구나,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새삼 말하지 않더라도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먹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식물은 은밀하게 땅속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데 일부 벌레를 제외한 모든 동물은 지상에서 먹는다. 사람들이 우아하게 격식을 갖추고 식사를 즐기지만 하루쯤 굶어 허기지면 동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먹이 때문에 싸우는 건 동물만이 아니다. 아직도 인류가 먹이를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먹는 일이 생존의 필수 요건인 셈이다.
사랑을 하면 상대가 배고프지 않은지 염려한다. 모든 어미는 필사적으로 제 새끼를 먹이려 애쓴다. 사랑의 시작도 그 지속도 먹는 일과 무관 할 수 없음을 느낀다.

무얼 먹느냐가 사람됨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육식은 몸을 산성화시키고 여러 가지 질병의 단초가 된다고 경고를 받는다. 예전과 달리 인위적으로 사육되는 가축의 대다수에게 오염된 사료가 공급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자연에서도 육식 동물은 잔인하고 포악하다. 살상이 전제되는 이유일 것이다. 전란을 겪으며 힘겹던 시절에 육식은 호사였다. 김치와 된장찌개가 밥상의 단골 메뉴였으니 어쩌다 짜디짠 간 고등어라도 오르면 최상의 식사였다. 명절이나 제사 때라야 겨우 육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소비가 미덕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어느 대통령의 비전이 현실이 되면서 먹을거리가 넘쳐 음식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식도락을 들어내 놓고 얘기해도 좋은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을 위하다가 몸이 상하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선조들이 먹어 오던 음식으로 회기 하게 되는 까닭이다.
제주도는 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이라 밭에 채소가 산다. 제주도 겨울배추는 서릿발이 차고 때때로 눈발에 묻히면서도 얼었다 녹았다하며 잎은 두터워지고 당분이 차올라 그 맛이 일품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양산되는 웃자란 어떤 채소가 맨 몸으로 냉기를 이겨낸 겨울 배추와 비교할 수 있으랴. 가을에 미처 포기를 채우지 못한 하품짜리 배추는  뽑지 않고 그냥 밭에 놔두는데 서서 찬바람을 맞기가 싫은지 대지에 힘껏 잎을 펼치고 눕는다.
이른바 퍼대기라 불리는 겨울 배추 모습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뽑아서  시장에 내오는 까닭에 겨울 내내 싱싱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상쾌하다. 쌈 배추로도 그만이고 된장국을 끓이거나 것절이 김치로도 좋다. 또 이곳에선 겨울 별미로 콩가루를 풀어 끓이는 콩국을 잘 먹는데 콩국도 겨울 배추나 무를 넣어 끓이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날 배추도 맛있고 삶은 배추도 맛이 좋아서 겨울 내내 배추가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삶아 낸 국물에 기름 걷어 내고 생 배추를 뜯어 넣어 국을 끓이면 그 맛이 또한 별미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도 손색없는 맛을 내기 때문에 무엇보다 소화 잘 되고 몸에 이로운 음식인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사람이 위가 아프다는 건 그 사람의 수치다.’ 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음식을 위에 집어넣는 사람의 책임을 묻고자 했을 것 같다. 위가 아프다는 게 꼭 음식 때문은 아니겠으나 해롭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옳은 주장이다. 온갖 술수를 다하여 입맛을 사로잡으려는 상혼이 판을 치는 세태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자주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해로운 음식을 먹게 되는지 살핀다면 저 철학자의 지적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미식에 식도락이라! 결코 탐할 일이 아니지 싶다.
혹시라도 위가 불편한 사람이 이글을 읽는다면 겨울엔 제주에 내려 와서 배추 된장국을 한 달만 장복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갓 잡아 올려 펄펄 뛰는 생선국도 간간히 먹어 준다면 금상첨화이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음을 기뻐했던 김 선비의 맑은 기상이 우러러 보이지만 토란엔 약간의 아린 맛도 있는 터라 너무 많이 토란국을 먹어 혹시 해롭지나 않았을지 부질없는 걱정이 들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비의 생애가 아프게 다가왔다.

수필가 공 옥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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