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새해 인사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이렇게 한 해가 기울게 되면, 누구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기 마련인데 2004년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길고도 힘든 한 해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허공에 걸린 외줄위에서 아슬아슬한 기예를 벌이는 광대나 곡예사처럼 사회 전체가 외줄을 타고 있는 느낌이다. 과거의 정치행태를 청산하고 새롭운 모습으로 '뭔가 보여주겠다'고 큰소리 치던 국회의원들은 과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사사건건 ‘말시합’ 같은 논쟁으로 원색적이고 천박한 표현과 경박한 행동으로 체면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 탄핵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가을에는 행정수도이전을 놓고 반쪽짜리 나라를 또 둘로 갈라놓았다. 지금도 사상논쟁으로 여기저기서 위험을 알리는 고성이 터지고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의 살림살이에는 안중에도 없다.
사회전체가 외줄에 올라탄 우리의 경제상황은 정치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살얼음판처럼 언제 떨어져 죽을지 불안하기 그지없다. 금년도 5% 성장을 장담하던 경제팀도 이제는 어렵다고 하고, 기업들은 올해 보다도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숨이다. 구조조정과 도산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서민들의 생활은 말할것도 없이 엄동설한으로 얼굴에는 근심걱정이 가득하다. 말로는 ‘경제가 최우선이다’, ‘경제를 살리겠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은 '개혁노이로제'에 걸려 기업과 서민들의 하소연은 뒷전으로 밀쳐놓은 결과다.
그러면 지금보다 내년에는 나아질까? 모든 서민들의 바램이지만 새해에도 우리 경제의 전망도 결코 밝지 않은 것 같다. 한 경제단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열명 중 일곱명이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는 암담한 우리의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면 내가 힘들더라도 자식들이라도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올바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감만 쌓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니 우리 사회 전체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해마다 이맘때면 자선남비며, 이웃돕기 성금모금이며, 세밑 온정의 소리가 자주 들리곤 한다. 날씨도 날씨지만 올해는 극심한 경제한파 때문에 추운이웃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궁해지다 보니 사회의 온정은 갈수록 꺼져간다.
이처럼 경기가 불경기라 이웃돕는 손길마져 불경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럴때일수록 더욱 마음의 문을 열어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추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조그마한 관심과 사랑으로 손을 잡으면서 우리 주위의 이웃과 함께하는 겨울은 그 어느때 보다 따뜻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5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한데 모으고 희망을 키워보자.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힘겨움은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어려움이 내일의 기쁨이 되는 새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반목과 갈등을 접고 화해의 시대로, 경제는 희망의 빛을 만들어가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