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안 정리를 하던 중 책 묶음 속에 색이바랜 책 한권을 찾았다. 72년 공산권 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초등학생 반공 교육용 독본이다.
책 한 장을 살펴보면 용감한 어린이 투사 고난을 이긴 어린이, 그리고 간첩식별 요령 등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는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대한 참상을 선전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래도 이중에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도 있다. “공산당이 싫어요”. 지금은 가물가물 하지만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43년 전 1968년 12월 강원도 평창군 속사리에서 발생한 무장공비에 살해된 이승복 어린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그는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이였다. 그해 12월은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렸다.
그 조용한 산간에 부모와 형, 동생 모두 여섯 식구의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에 북한 무장공비가 숨어들어 왔다. 어린 승복이의 공산당이 싫다는 그 이유 때문에 가족을 몰살시킨 사건은 지금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만행적인 살인행위는 남한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결정기였던 60~70년 초기에는 청와대 습격, 강원 삼척, 경북 울진에 중대 병력인 무장공비가 침투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시대에는 국가이념이 반공 이였다. 이 시기에 초겵峠剋壎湧?반공교육이 강화되었다. 학년이 높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학도 호국단을 창설하여 군사훈련까지 받았다. 이같은 남과 북의 대치는 한국전쟁이후 당시 발칸반도의 화약고처럼,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했다.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거칠게 요약한다면, 세계가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강도가 점점 높아지자 공비 침투보다는 일종의 심리전인 전단지(삐라)가 남한을 향해 시도 때 도 없이 무차별로 뿌려졌다. 우리 역시 북한의 선전물을 수거하기 위해 해안가나 산간오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간첩 식별요령을 학습시키고, 거동수상자를 신고할 수 있는 신고 센터가 생겨났다. 대중의 출입이 많은 상가,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공중화장실에도 ‘간첩 신고 시 포상지급’ 전단지까지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가 간첩신고 선전용 전단을 뿌렸다면 북한 역시 공중에서 무차별 전단지를 뿌렸다. 대형 풍선에 매달려 뿌린 선전물을 수거하여 신고한 어린이는 연필과 노트를 상품으로 주었고, 어른들은 대공 유공자로 표창을 주었다.
그러나 잘나가던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이 바꾼 10년간은 그 많은 선전물을 주워 경찰관서에 신고해도 노트나 연필 등의 상품은 없었다. 더욱이 국가를 보위하고 안보의 첨병인 경찰청도 전국 경찰관서에 북한 선전물을 수거하여 상황을 매월 보고하도록 했지만 도리는 없었다.
풍선 날리기 좋은 북서 계절풍이 많이 부는 날에는 특별기간을 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북한 선전물 수거처리 규칙을 폐지했다.
이유야 어찌하든 2004년 6월 남북이 상호 비방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양쪽은 군사 분계선 지역에서 방송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선전 활동 중지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합의 이후 몇 년 동안 수거실적이 없어 이 규칙은 사실상 사문화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용어정비 작업을 통해 좌익사범을 국가안보위반 사범으로 바꾸고 보안법까지 폐지 시켰던 것은 노 정권 시대였다. 좌에서 우로 보수 시대가 열렸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과거의 정권과는 온도차이가 달랐다. 김정일 체제비판, 인권문제, 가족문제와 최근에 김정은 세습 등 북한 수뇌부를 자극시키는 선전물을 보수단체에서 북한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
앞으로 남북대치는 어떤 가상도 어떤 예단도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심리전인 종이포탄이 선전물로 점점 극렬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날려 보내는 선전물을 발견하면 반드시 경찰관서나 행정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우리들이 의무이며, 나라를 보호하는 작은 정성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