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와 족보
성씨와 족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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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성씨와 족보를 잘 따진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 국가에서도 가계(家系)를 중시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싶다. 모든 만물에는 원천이 있다. 식물에 뿌리가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근원이 있다. 그 근간(根幹)이 바로 선조요, 혈통이다.

족보는 이렇듯 시조(始祖)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낸 세계(世系)를 말하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보학(譜學)이라고 한다. 따라서 족보 즉, 근본을 모르는 후손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선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관향(貫鄕)이나 가문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외국 유명 가수나 배우들의 계보는 훤히 꿰뚫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조상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오히려 성씨(姓氏)나 친족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구시대인(舊時代人)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풍조는 바로잡혀져야 한다. 근거 없는 후예(後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족보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1476년(조선 성종7년)에 간행된 성화보(成化譜-안동 권씨 족보)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는 고려 때에도 씨족계보를 중시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전부터 족보가 활용돼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성(姓)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몽이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칭하면서 자신의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고, 백제를 세운 온조는 부여 출신임을 내세워 부여씨(扶餘氏)라 하였다. 신라의 박혁거세는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탄생하였다하여 그 음을 따 박씨(朴氏)라 하였으며, 김알지는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김씨(金氏)라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는 가나다순으로 가씨(賈氏)부터 흥씨(興氏)까지 2백8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최대의 성은 김씨로 1천여만 명이나 되며, 이ㆍ박ㆍ최ㆍ정(鄭)ㆍ강(姜)씨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희귀 성으로는 비(丕)ㆍ십ㆍ두(頭)ㆍ묘(苗)ㆍ초(初)씨 등 40여개나 된다. 남궁(南宮)ㆍ독고(獨孤)ㆍ황보(皇甫)ㆍ사공(司空)ㆍ선우(鮮于)ㆍ제갈(諸葛) 등 두 글자를 쓰는 복성도 여럿 있다.

 이처럼 성이 많다보니 성(姓)만으로는 혈족을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본관(本貫)이다. 가장 많은 본관별 성씨는 김해 김씨로 전체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11명 중 1명 꼴인 셈이다. 다음이 밀양 박씨(6.6%), 전주 이씨(5.7%) 순이다.

 이쯤 되면 명문(名門)ㆍ현가(賢家)는 과연 어디인가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흔히 조선왕조의 문무(文武)급제자나 3정승 등 고위 관직자의 수(數)를 가지고 얘기들을 한다. 1980년대에 출판된 ‘한국 과거사(科擧史)’를 인용해 보자. 조선시대 왕족인 전주 이씨를 제외하고, 과거급제자와 상신(相臣)ㆍ문형(文衡)ㆍ공신ㆍ청백리 등을 가장 많이 배출한 문중은 안동 권씨와 파평 윤씨를 비롯해서 남양 홍씨ㆍ청주 한씨ㆍ안동 김씨ㆍ광산 김씨ㆍ밀양 박씨 순이다. 그밖에도 이 명단에는 141개의 본관을 가진 관리들이 더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명문가는 이런 높은 벼슬을 가지고 구분하지 아니한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관점은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데 있다. 이를 중심으로 명문가의 기준을 살펴보면, 그 첫째가 역사성이다. 역사를 의식하는 삶을 살았는가는 것이다. 둘째는 도덕성이다. 국난에 대처하고 타인에 관대한 이른바 선비정신이 흐르고 있는가 이다. 세 번째로 가서야 인물을 꼽는다. 과거(過去)와 현재에 걸쳐 어떤 현인ㆍ호걸들이 활동하였느냐는 것을 논하는 것이다.

 성씨와 족보를 구세대들의 케케묵은 사고(思考)의 유물이라고 매도하지 말자. 조상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아는 일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살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옛 선조들의 행적을 답습만 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분들의 사상과 철학, 유덕과 업적을 오늘에 계승하여 참되고 보람된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 나가자는 뜻이다.  

논설위원 이 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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