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겨울풍경
삶의 겨울풍경
  • 김찬집
  • 승인 2011.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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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절친한 지인끼리 신년 소주파티에서 주서들은 삶의 겨울풍경이다. 이 세상에서 진실로부터 도망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피하고 싶어도 삶이라는 진실은 너무나 끈질겨서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남보다 늦은 50대중반에 대기업에서 퇴직한 한 후배의 이야기다. 그는 대학 졸업당시 취업을 위해 수 백 장의 이력서를 쓰고 졸업증명서를 때어 수많은 회사에 원서를 넣은 것은 동기생들 간에 유명한 일화일 뿐 아니라 선배인 나도 아는 사실이다.
 이 후배는 작은 중소기업을 몇 군데 거쳐 그는 30대 중반에 중반대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채용되었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20 년 만에 임원이 됐다는 것이다.
허지만 이 후배는 여전히 힘들었다고 했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서 챙겨주는 회사선배도 없었고. 특히 직속상관은 노골적으로 그를 미워했었다는 것이다. 인내심이 대단한 후배지만 견디기 힘들 때가 종종 있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솔직한 말을 했다.
이 후배는  어떤 날 밤에는 술에 취해 귀가해서 아내에게 “내가 과로로 혹시 갑자기 죽게 되면 그 사람 조문을 절대 받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고도 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든 직장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던 아내는 순간 눈물을 글썽 거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후회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중소기업에 다니던 결혼 초기에는  물이나 초코파이로 정심을 대신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식권을 팔아 첫딸의 분유를 사곤 했다는 얘기도 털러 놓았다. 이 후배가 그런 사실까지 몰랐던 우리들은 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냥 술 만 들이 켰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삶의 춥다는 것은 겨울옷이 없어서 추운 것만이 아니다. 삶의 작은 아픔을 핥아주는 슬픔이 하얗게 소금이 되어 삶의 강물에 흐르는  것처럼 소외감이 더 추운 것이다.
생활이 어렵고 사회가 각박한 외로움과 고달픔은 언제나  삶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이지만 겨울에가 더 버겁다.
냉혹한 삶의 겨울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요즘 우리 동네에도 있다. 아침운동을 가면서 보는 우리 동네 골목길 새벽 인력시장이다. 한 겨울 새벽에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가로등 불빛이 북풍처럼 차갑다. 그 불빛아래 젊은 꿈이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청년들이 인력시장으로 모여든다. 재앙과  같은 청년실업, 몇 번 직장채용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젊은이 들이다. 집값, 기름 값, 생필품 값이 치솟아 생활의 공포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겐 취직시험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외에 여러 개의 공포가 있을 것이다. 집세가 공포고, 밥값이 공포고, 청첩장이 공포고, 겨울바람과 세월조차 공포일지도 모른다. 새벽의 인력시장아침은 여명이 트기 시작했으나 모노톤(monotone)이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색, 겨울모노톤  풍경이다.
아침이 시동을 걸면 점액질 유체처럼 흐르는 군상을 보면서, 그 청년들은 ‘생존경쟁’을 실감 하는 것이다.
‘생존경쟁’이라는 단어는 생존을 위해서 투쟁을 한다는 능동적인 개념이 있는 반면에 나이를 들고, 조직 환경변화 때문에 다른 것들이 도태되는 상황에서 남아있기를 위한 수동적인 개념도 있다. 그래도 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비관을 하지말자고 권하고 싶다. 앞에서 말한 나의 후배처럼 젊음은 살아남는 쪽으로 출발해야 한다. 좀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희망으로 살아가자, 시간을 앞세워 쫓아가지도 말고, 시간 앞에 가면서 미래를 가불해서 쓸 필요도 없다, 건강과 도전은 젊은이들에게만 주어진 축복일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싸락눈겨울의 정서도 마음의 밭도 척박해 질수뿐이 없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다.  겨울나무도 한번 쓰다듬어 보고 겨울눈 옆에 핀 야생화도 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하면서 삶의 버거움을 이기자, 설혹 세상이 미워도 사랑하자, 사랑은 인생을 처방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순간 살아 볼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젊었을 때에 삶의 한파는 유연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초년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다.  가끔 석양이지는 공원벤치에서 앙상한 겨울나무사이로 지는 석양의 모습을 보는 노부부의 처량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그 노부부에게도 젊음과 패기, 기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유한성을 받아드릴 수뿐이 없는 엄숙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생의 겨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 고생의 유연성은  늙었을 때 세월의 유한성에 비하면 하늘이다. 겨울풍경은 어쩌면 인생의 끝을 생각 할 수 있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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