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일을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계획을 세워본다. 개인적인 일부터 공동체 일까지, 지난 일년을 회고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또다시 새로운 착상이 떠오른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북제주문화원은, 지난해 10월 24일 개원하여 벌써 일년을 넘겼다. 개원준비에서부터 첫 해 사업진행까지 숨가쁜 한해를 보냈다. 나름대로 문화원의 역할을 했다고 자위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수립에도 고심을 해본다.
그 동안 「혁암산고(革菴散稿)」와 「북제주문화」를 발간하고, 「농은문집(農隱文集)」영인본도 출간하였다. 몇 번의 세미나도 가졌으며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다녀왔다.「혁암산고」는 저항시인 혁암(革菴) 김형식(金瀅植)의 한시·한문을 번역한 책이다. 혁암은 정의현감을 지낸 농온(農穩) 김문주(金汶株)의 차남이며,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이며 항일 언론인 송산(松山) 김명식(金明植)의 친형이기도 하다. 「농은문집」은 혁암의 선친 김문주의 농은집(農隱集)과 삼은집(三隱集)을 합본하여 영인본으로 인쇄한 책이다.
멀리 북제주문화원까지 찾아와 서명을 하고 책을 갖고 가는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보면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내년에는 더 좋은 작품을 찾아내어 계속 발간사업을 해 나갈 것이다. 특히 올해 기억에 남는 일은, 북제주군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한 일과 관내 소외계층 주민과 함께 떠났던 문화체험 프로그램이다. 문화체험프로그램은 지역의 저소득층·불우계층 등 소외계층을 비롯한 지역주민의 문화향수권 확대와 지방문화원의 활성화를 위해 통합 복권기금으로, 지방문화원에 시행토록 문화관광부에서 예산이 지원된 사업이다. 여기에는 건전한 여가 문화정착 도모라는 크나큰 목표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렇게 일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문화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는 바로 문화의 역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건설함으로써 안정된 삶을 영위해 왔으며, 그 문화는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대문화를 기술문화라고 부르며, 현대인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왜 현대문화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가?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 대답하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궁극적 관심'으로써의 종교는 문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문화신학'이란 신학용어를 만들고 사용하였다.
폴 틸리히는 문화라는 말로써 한 시대 한 공간에 주어진 인간 정신의 표현들을 묶어내었다. 그가 믿기로, 모든 문화는 인생을 보는 특별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가치관, 신념, 목적, 희망, 포부, 충성심 등의 독특한 종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문화는, 그가 종교를 가리키기 위하여 말하는 "궁극적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어떤 문화의 유형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의 궁극적 관심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문화적 인식을 발전시켜 주민들의 문화교육과 문화사역을 진취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일에 앞장설 것을 다짐해 본다. 새로운 2005년을 향하여 아듀, 2004년!
김 관 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