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갈 수 없는 곳, 나를 따르지 마라"
"폭풍, 갈 수 없는 곳, 나를 따르지 마라"
  • 고안석
  • 승인 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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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제주방송총국 개국60주년 기념 변시지전 개최/엄선된 작품 72점 전시…동서양이 공존하는 자리
KBS제주방송총국(총국장 김동주) 개국60주년 기념 변시지전 '변시지-폭풍, 갈 수 없는 곳, 나를 따르지 마라'가 10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제주 4다(四多)의 풍토에 주목해 자연과 풍물, 그리고 제주인의 삶의 모습들을 서정(抒情)과 서사(敍事)로 엮어내는 노대가(老大家)의 1980년 이후 무르익은 제주시대의 작품 가운데 엄선된 72점으로 구성했다.
제주시대는 그야말로 변시지 화백의 독보적인 작품세계가 형성되는 시기로서,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는 황갈색의 모노크롬 세계를 탄생시킨 중요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황갈색, 거친 선과 빠른 붓질, 여백, 단순한 선들로 이루어진 변시지 화백의 예술세계는 젊은 시절부터 굳혔던 서양 유파(流派)의 입지(立志)를 미련 없이 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한평생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고자 벌인 고독한 싸움은 서양의 기(器)로 시작해 동양의 기(氣)로 완성된 전형(典型)을 남길 수 있었다.
나이 80세를 훌쩍 넘겼음에도 변 화백의 미학적 고민을 끝내지 않았다.
한 점(點)만으로 이 세계를 표현 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마치 유(有)의 세계에서 점점 무(無)의 세계로 흘러가 도달한 진정한 무(無)의 세계야말로, 명증한 유(有)의 세계임을 말하려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변시지 화백의 대형전시이다.
변시지 화백은 1926년 서귀포 동홍동에서 태어나, 6세때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성장하며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연소로 광풍회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청년기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인물화와 풍경화로 인정을 받아오던 그가 1950년대 후반에 서울로 돌아와 작업하면서 '비원파'라는 극사실주의 회화 기법을 시도함으로써, 한국적인 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0년대 중반 돌연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정착하면서 기존의 작품수법과 표현의식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전기를 맞게 되는데, 작가가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았던 '순수와 원시의 섬' 그리고 '척박한 역사와 수난의 섬 제주'는 황토빛의 절제된 색으로 표현됐다. 과감한 생략과 거칠은 표현, 동양적 여백의 활용은 작가의 내면에서 조형화된 마음의 풍경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그는 "예술로서의 창작이라는 것은 역시 자연 속에서 얻어지는 충동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고향 제주에서 느끼는 고독, 인내, 불안, 정한(情恨), 그리고 기다림 등을 소재로 작업해 왔다.
작가가 빚어낸 내면의 풍경들은 한국적인 풍토를 뛰어나게 표출해 낸 것으로 평가받아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변시지 화백의 미학처럼 예술과 풍토, 지역성과 세계성, 동양과 서양이 함께 만나는 희귀하고도 소중한 사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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