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 작가의 고민
대필 작가의 고민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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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은 시절, 제주도청에서 고스트라이터 직분으로, 두 분의 도백을 모신 경험이 있다. 한 분은 내가 올린 원고를 거의 수정 없이 시원하게 결재를 해 주셨고, 한 분은 꼼꼼하게 원고를 지적하며 자세하게 수정할 부분은 안내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며, 두 분 도백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대필 작가((ghostwriter), 고스트라이터는 다른 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대신 써 주는 사람을 말한다. 글의 일부분이나 전체를 창작하거나 재구성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지 않으며 출판사의 기획의도나 의뢰인의 기호에 맞게 집필한다. 주로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들의 자서전이나 성공담을 내용으로 하는 출판물들을 다룬다. 그리고 관공서에서 수장의 연설문을 집필하는 사람도 고스트라이터라고 부른다. 미국의 경우, 출판사가 대필 작가들을 고용해서 소설을 쓰게 하고, 이를 시장성 있는 작가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경우는 이제 상식처럼 되었다.

유명인의 목소리로 활동하는 대필작가, 고스트라이터.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고스트라이터는 유명인과 가장 밀접하고 비밀스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각별한 존재다. 로버트 해리스가 쓴《고스트라이터》라는 소설도 있다. 자살한 전임자 대신 영국 전직수상의 고스트라이터로 새롭게 고용된 주인공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이 남겨진 전임자의 메모를 보면서 함께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로버트 해리스가 중요하게 다룬 것은 정치적 비밀이나 반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투영한 글쟁이로서의 주인공의 심리다. 특히 비록 이름은 실리지 못하지만 화려한 작업물을 발표하며 자신감에 넘치던 주인공이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자존심인 글쓰기에 대한 무기력함에 빠지는 과정은 작가가 마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며 쓰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고스트라이터》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도 다양하다. 가디언은 “로버트 해리스는 문학적인 알프레드 히치콕이다.”라고 했고, 데일리 잇스프레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이슈를 지적으로 다루는 작가, 로버트 해리스.”, 그리고 뉴욕 타임스는 “번득이는 주제, 명쾌하고 관록 있는 작품의 구성, 지적인 재미가 넘치는 작품.”, 더 타임스는 “지적 스릴러의 거장 로버트 해리스가 가지고 돌아온 《고스트라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이색적인 소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라고 일갈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자서전은 없고 타서전만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 유명인들의 자서전 가운데는 그만큼 스스로 고뇌하며 진솔하게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는 자서전이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재벌이나 정계의 거물처럼 잘 알려진 인물일수록 실력을 이미 인정받은 기성작가들을 선호한다.

나도 일전에 제주도에서 꾀 이름이 알려진 분으로부터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주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 분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승낙은 했지만, 여러 번 접촉하면서 자서전 집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온 그 분의 자서전을 읽고 얼굴이 뜨거워 지는 느낌을 받으며, 자서진 지필을 포기한 것을 매우 다행이라 생각했다.

유명작가가 대필한 경우 지은이가 밝혀지는 것은 주문자뿐 아니라 실제 지은이도 원하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이 창작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울 때 일할 뿐 자서전 대필은 자신의 문학적 경력에 오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출간하는 유명인 가운데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연말이 가까우면서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시내 곳곳에서 열릴 기미를 보이고 있어 사뭇 씁쓸하다.

김관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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