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반찬 맡기면?
고양이에게 반찬 맡기면?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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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반찬을 맡긴다는 말은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하면 나중에 손해 볼게 뻔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오늘 모 지방일간지헤드라인에  “제주도 산하기관 공기업 특채남발” 이라는  뉴스타이틀은  백수 또는 88만원 세대자식들을 운명으로 받아드리며 공정사회를 갈망하는  중산층도민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제주도공기업 특채비율이 제주도 문화예술제단100%, 제주신용보증제단100%, 장애인체육회100% 제주발전연구원53.3% 제주개발공사23.8% 등 전체적으로 18.9%를 투명성이 취약한 특채방식으로 직원을 채용했다는 내용이다.
공기업은 채산성이 너무 많아서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것과 또 채산성이 너무 적어서 시장이 할 수 없는 부문에 대하여 사회의 공익과 공정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국가나 지방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공정사회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공기업에서 공정사회를 허무는 인사제도를 한다는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는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네 속담은 부지런히 노력만한다면 성공하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이걸 공정사회라고 우리들은 상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인생역전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인생역전을 뒷밭침하는 버팀목은 공조직에서 직원체용시험제도다. 이 버팀목을 공조직에서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제주 인들은 조상대대로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소박하게 보일만큼 사회비리에 대하여 노골적인 경멸과 반감을 가지는 속성을 지닌 도민들이다. 우리 제주에서도 자녀문제가 걸리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금 제주도 공기업의 특별채용보도는 88만원세대, 백수뿐 아니라 자식가진 모든 도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무직 때문에 명절 때도 부모 볼 면목이 없어 고향에 못 온다는  무권무직(無權無職)자식에게 이젠 중산층들은 부모 잘못 만난 죄를 빌게 되었고 푸념한다고들 한다.
물론 지금은 지식정보화 시대이고 세계화시대에 과거 지향적인 시험제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투명성 없이 배후(back ground)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를 허무는 일이다.
지난여름에 중국의 신화통신영문판 기사 내용이다. “족벌주의 스캔들이 남한에 출몰했다.(Nepotism scandal has haunted South Korea)” 제목으로 낮이 뜨거운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유명환전 외교부장관의 딸 특채기사다. 한나라의 외교 수장이 결국 나라를 망신시키고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족벌주의는 인간의 본성일수 있다. 이지서베이(ezsurvey.co.kr)가 최근 직장인 8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70%가 백(back ground)으로 입사한 사람을 안다고 밝혔듯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백으로 입성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직자나 국민의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補塡)해주는 공기업은 다르다. 국가기관을 사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지인을 통해 세금을 빼돌리는 일종의 부패행위다. 공직규정을 짜 맞춰서 지인을 조직에 집어넣는 것은 더 유능한 공복(公僕)을 놓치는 결과보다도 신뢰 하나로  눈물로 버티는 고시준비생들에게 총을 쏘는 일이다.
구굴 영문판으로 최근에 족벌주의를 검색하면 우리나라를 빼곤 거의가 아프리카, 파키스탄, 이라크 같은 후진국 일색이다. 족벌주의는 후진국의 산물임에 틀림이 없다.
공기업 특채 채용에 대해 용서하기 힘든 것은 신분제를 부활시켜 이지역의 보통 부모들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그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했다.
특채비리의 중심은 부모들의 지연, 혈연, 권력, 돈으로 자식들을 취직 시키는 일이다. 이게 전형적인 양극화다.
부모들의 낙담하면  자식들도 낙담한다. 자식들은 매사에 비판적으로 한 술 더 뜬다. 서울 고시촌에서 취직시험을 공부하는 조카뻘 되는 후배는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骨品)제도인 등급이 있다는 이야기다. 부모 힘으로 특채되면 성골, 친족 힘으로 특채되면 진골, 아는 사람에게 부탁 할 줄이 있으면 육두품, 비빌 언덕 없이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자신 같은 사람은 천민이라는 것이다. 능력이 안 되는 부모세대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론 부모가 고위공직자면 성골, 사회적 배려대상자이면 진골, 정치권에서 앞 다퉈 마련한 혜택을 받게 될 서민이면 육두품, 이도저도 아니면 천민으로 살아야 할 판이다.
성골, 진골 부모들은 자녀의 뒷바라지 영역을 대학 입학을 넘어 취업까지… 위선에 보통부모들의 가슴에 대 못을 박는다. 이건 위장 전입과 달리 모방도 할 수 없다.
대대손손 벼슬을 잇겠다는 신분집착도 문제지만 현 위치를 발판삼아 자식직장까지 챙기는 위선은 서민들의 눈에 불을 지른 것은 분명하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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