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월령가(送年月令歌)
송년월령가(送年月令歌)
  • 조정의 논설위원
  • 승인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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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령가는 한달한달 순서대로 한 해의 기후나 의식, 행사 따위를 읊은 가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다. 이 농가월령가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장편가사다.
   농가월령가는 정월부터 십이월에 이르기 까지 머리노래를 합하여 13장으로 되어 있다. 조선 헌종(憲宗) 대에 농가에서 겪어야 하는 일년 동안의 파종과 갈무리, 세시 음식과 풍속 등을 체계적으로 묘사함으로서 농경사회의 규범으로도 한몫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농가월령가를 승화시킨 세시월령가 또는 세상월령가 등 세태를 풍자한 월령가들이 사회저변에 파급되면서 서민들이 즐겨 읊조렸다.
   농가월령가 십이월 령의 가사를 보면 모든 게 풍요롭다. 술동이에는 술이 가득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옷감이며 음식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다. 이 월령가 십이월 령이 곧 송년월령가다. 한해를 보내면서 만끽했던 그 풍요로움, 설핏 그 시절로 회귀하고 싶어지는 게 작금의 세태다.

   우리는 갑신년을 맞으면서 할일도 많고 소원도 많았다. 그 많은 일들과 소원들을 정월에 못 이루면 이월로, 또 삼월로, 그 때 그 때 이루지 못한 일들을 한달한달 뒤로 미뤄놓았다. 다음 달에는 뭔가 이뤄지겠지 하는 바람이 있었기엡.
  그러다가 이제 십이월, 송년의 눈앞에 닥쳤다. 이제야 다급하다. 언젠들 미루고 싶어서 미루었을까마는 한 해가 다 가는데 미완의 일들을 해결할 묘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뤄놓은 소원도 눈에 띄는 게 없다. 아등바등 발버둥쳤던 한해가 허허롭기 그지없다.

   2004년 12월,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돈이 돌지 않아 울상이고 일자리를 잃은 아들은 한숨만 쉰다. 모두가 동분서주 해 보지만 십이월이 가기 전에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맘 때 농가월령가를 읊조렸을 우리 조상들의 송년은 어떠했을까. 어디에도 넉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갑신년의 송년은 처처에 목을 움츠려야 하는 냉기 일색이다.

   2004년 12월, 농부는 자식같이 정들여 키운 배추를 갈아엎어야 되는 현실에 망연자실,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양배추 가격마저 별로라는 소식에 이마엔 골이 파이고 송년을 앞둔 농부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고개 숙인 농부가 읊조리는 갑신년의 송년월령가는 서글프기 짝이 없다. 올해 우리농부는 풍요로운 농가월령가 십이월 령을 잊어버렸다. 모두가 눈앞이 캄캄하단 말을 서슴없이 토정한다. 왜, 이럴까. 조상들의 십이월 농가월령가는 넉넉했는데….

   『십이월은 늦겨울이라 소한대한(小寒大寒) 절기로다. 새해 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가. 여인들은 새 옷을 장만하고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 인고, 콩을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로 만두 빚소. 세육(歲肉)은 계를 믿고…. 아이들은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生栗)이라.』옛 조상들이 읊었던 농가월령가 중 십이월 령을 요약한 것이다. 구절구절 풍족함이 엿보인다. 십이월을 늦겨울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음력절기를 기준했음이다.

   우리도 이제 풍요로운 월령가를 부를 때가 되었다. 2007년이면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그 때는 여인들이 새 옷이며 떡쌀이며 술쌀을 장만하고 콩을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로 만두를 빚게 될 것이다.
  소득 2만 불 시대, 앞으로 두해 남았다.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그 때 우리는 풍요로운 송년 월령가를 불러도 됨직하다. 갑신년의 송년, 매운 하늬바람은 칼바람으로 변하여 한껏 바다를 뒤집어놓고 있다. 성난 파도 속으로 회한과 오욕의 갑신년, 한도 많고 탈도 많던 한해가 속절없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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