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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가 제주지방법원에 제출한 범양건영 측의 탑동 매립사업 근저당 설정등기 말소 청구소송에 대한 ‘답변서’는 매우 타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주시는 답변서를 통해 “탑동 공유수면 매립사업과 관련, 범양이 병문천 복개 및 장학기금 20억원을 제주시에 기탁키로 약정한 사실만 인정할 수 있다”면서, 특히 “범양은 제주도민들을 상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명감으로 두 가지 의무(병문천 복개·장학금 출연)를 이행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공언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도 이 두 가지 의무를 2004년말까지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제주시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도민들은 범양이 탑동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인해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으며, 범양이 도민들을 상대로 스스로 약속한 의무를 팽개쳐 버린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과 울분을 느끼고 있음도 사실이다.
따라서 제주시가 범양이 제기하고 있는 주장들에 대해 충분한 증거자료를 대며 반박하는 한편 반소(反訴)를 제기 키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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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바와 같이 범양은 지난 1991년 제주시 탑동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개발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체결된 이른바 `‘탑동 협약서’에 따라 병문천 복개공사 및 장학금 출연을 약속했으나, 지금껏 병문천 복개공사의 경우 병문천 하류에서 서광로까지 2058m 복개 협약 중 208m에 대한 복개공사를 외면하고 있으며 장학금 20억원 출연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범양이 최근 제주시를 상대로 `‘탑동 협약’을 근거로 설정한 근저당 등기를 해제하라고 법원에 기습적으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범양은 당초 병문천 복개와 장학금 출연을 약속한 것은 강제적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실제 1991년 오리엔탈 호텔에서 진행된 협약체결은 당시 양모·임모 신부의 위압 속에 반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강변하고 있다는 것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9월 범양측과 담판을 벌였던 김영훈 제주시장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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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 양보해서 생각하더라도 범양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협약이 체결된 지 10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협약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개 종교의 성직자들이 어떻게 ‘위압’을 가할 수 있었으며, 공권력도 아닌 사적인 위압(?)에 대기업이 쉽게 굴복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와서 이익이 적어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기업은 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그렇거늘 일부 시행착오를 감안하더라도 기업이 손익계산도 없이 사업에 뛰어드는 무모함을 저질렀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손해를 예상했다면 처음부터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유하건대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도덕성이나 기업윤리에도 반하는 일이다.
어쨌거나 제주시와 범양간의 법정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모양이지만 기업의 사회공익적 기여를 생각하는 도민들로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범양측은 ‘탑동 협약’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책임있는 기업으로서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세를 보여야 하며, 제주시는 시민들의 권익을 보호 증진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모든 법적, 행정적 조치를 강구해야 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