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묘사한다. “동방의 작은 나라를 깍두기 머리 임금님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임금은 국사는 돌보지 아니하고 국고를 탕진하면서 오로지 멋있는 옷을 입고 폼 내기를 즐겼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 대정부 발언의 일부다.
주 의원은 한 때 머리를 짧게 깍아 ‘깍두기 머리’로 불렸던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했다. 주 의원은 여권내 386 출신들을 ‘깍두기 임금’에게 옷을 짜주겠다는 ‘베짱이’로 묘사, 한바탕 배꼽을 잡게 했다. “베짱이들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벌밖에 없는 옷을 짜드리겠다면서 이 옷은 정직한 사람 눈에만 보이고, 마음 나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고 속여 수만금을 맏아 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열린 우리당 386 의원들이 “국회의원의 품위를 의심케 하는 저질 언급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저질발언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툭하면 색깔론이 나오고 욕설이 튀어 나온다. 의원들의 입을 통해 그것도 욕으로 레닌과 무솔리니가 등장하고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 폴포트 정권이 나타난다. “쪽 팔린다”는 비어는 보통이고 쌍욕까지 서슴지 않는다. 386 의원들이 저질발언이라고 했지만 그런대로 주 의원의 ‘개미와 베짱이’는 국민을 웃게하는 유모가 배어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흠집을 내기 위한 욕과 비꼬기는 개인의 카타르시스는 될지언정 국민의 카타르시스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만다.
▶2000년 1월10일 경실련은 국회의원 낙선ㆍ낙천 대상자 기준으로 ‘국회내에서 욕설등 저질행위자’를 포함시켰다. 경실련은 이 기준에 따라 당시 86명의 낙선대상자를 골랐다. 그로부터 이제 5년이 지나려고 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변한 것은 시간뿐이다. 사람들도 대폭 바뀌었지만 국회의 저질 발언과 욕설은 그때 그대로다.
▶초선의원 71명이 ‘국회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쟁, 막말, 동료의원 비하 근절’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의 정착’ ‘정책중심 의정활동’ 등 ‘대국민 10대 약속’을 제시했다. 국회가 제대로 가려면 우선 ‘정쟁, 막말, 동료의원 비하 근절’ 발언이 없어져야 한다. 이들의 연대모임과 활동으로 국회의원의 저질 발언이 사라지길 기대하지만, 과연 사라질 것인지 의문스럽다. 국회의원의 저질 발언은 의원 개인의 자질을 넘어 우리 정치풍토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파당과 싸움을 기본기로 하는 풍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