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습관을 들이면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껴진다는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미치앨봄이 지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공경희 역, 살림>”이라는 책이 있다. 평생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둔 모리슈워츠 스승의 불치병에 걸린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미치앨봄은 모리가 세상을 뜰 때까지 화요일마다 찾아가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서는 소변도 볼 수 없는 스승에게 제자가 묻는다. “만일 24시간만 건강해 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스위트롤 빵과 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을 하러가겠어, 그런 다음 나를 찾아온 친구들과 맛좋은 정심을 함께하고 그런 다음 산책을 하러 가겠어,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가서 여러 나무도 보고 새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연에 파묻히겠네, ……그런 다음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하는 일상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으로 천금 같은 하루를 보내겠다고 말하는 스승에게 제자가 다시 묻는다.
“그게 전부 다예요?” 자신의 단지 하루만 여생인데도 지금까지 마음의 습관을 드린 일상이 제일행복하다는 대답이다. 행복은 마음의 습관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죽음은 자신생애를 자기혼자 모든 것을 마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문장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바로 그 마침표일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다하고 나면, 인생이란 더 이상 고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문장 같은 것이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수명도 길어졌고, 불치의 상황이라도 장기이식 같은 최첨단 의학기술로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생명의 존귀함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가 숨을 쉬고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하루 일상을 시작하는 자체가 신의 내린 축복이요, 자신에 대한 기적의 행운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나도 인생중년을 훨씬 넘기면서 임종을 앞둔 가족, 친척, 친지들을 지켜보며 인생의 유한함에 전율(戰慄)을 삼킨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켜보는 모두들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불가항력 앞에서는 너무나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 하였다. 죽어가는 자에게 산자들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 앞에서 의학기술이란 말은 폭풍 앞에 조그만 초롱불에 불과하다. 의학은 살 수 있는 자들의 병을 관리 할 때 할용 하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인터넷 “한국문학방송(DSB)문학섹션”에서 시한부 시인의 쓴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시인은 “아내의 눈물”이라는 시심을 이렇게 쓰고 있다. “생사는 신의 소관이지 사람이 발버둥 쳐서 될 일이 아니지요, 가도 먼저 가는 것이고, 있어봤자 얼마를 더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워서 한 세상 살만한 곳이었습니다.” 하면서 아내에게 보내는 ‘시어’다.
내개와 삼십년이 넘도록/ 참 고생 많았다고 해야지만/ 이말 듣고 흘리는 눈물 서러워/ 난 정말 못 한다. 이승에 남은 나달 덤덤하게 살다가/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해야지만/ 이 말 듣고 흘리는 눈물이 무서워/ 난 정말 못한다. 그 눈물 서럽고 무서워 서라도/ 오래오래 살아 주마고 해야지만 / 이말 듣고 흘리는 눈물이 아까워/ 난 정말 못한다.
나는 시인의 얼굴도 모르고 한번 본적도 없는데도, 허나 이 시인은 여생의 시간을 쪼개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품위 있고 아름다운 마지막 마무리를 잘했을 것만 같다. .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17세기 파스칼은,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줄곧 줄을 서서 각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형수라고 말했고, 19세기 말 현대시의 시성(詩聖)보들레르는 이곳(이승) 삶은 병원이며 여기서 환자들은 제가끔 잠자리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빠져있다. 라는 말을 했다.
철학자들의 말과 같이 죽음은 병원에서 환자가 병실을 옮기는 것이나 같은 일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부터 1년간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먼저 소원했던 친구. 친척들에게 전화도 걸어보고, 이 메일함을 뒤져 간단한 안부도 보내고, 고마웠다는 휴대폰 문자도 보내고,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잠든 아내의 얼굴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서 내가 저승으로 가더라도 눈물을 많이 흘리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보자.
앞에서 시한부 인생도 소소한 일상이 행복하다고 한 것같이 그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 요즘저녁에 그믐달이나 석양의 저녁놀, 길섶에 핀 이름 모른 야생화, 보도에 떨어진 가로수 낙엽들, 겨울철 눈 덮어쓴 나무들까지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가을 저녁이다. 그저 살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오늘 따라 행복하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