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나간 것은 그리워하게 되고,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올 추석도 곧 다가왔는데, 촌에서 학교를 마친 사람들에겐 그 추억이 더 짙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의 사오십 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원 없이 고기를 먹어보고, 떡을 먹어보고, 곤밥(쌀밥)을 먹어보고 싶었던 추억이 여전하리라.
오죽했으면 추석이 가까워 오면 매일 손꼽아 기다렸는가. 명절, 제사 때가 아니면 곤밥을 먹어보는 것이 희망사항일 때였으니 때가 되면 원대로 먹고자 했다.
특히 추석명절 때는 하루 종일 곤밥, 떡, 고기 등을 먹고 배탈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추석날이라고 해서 위가 두 배로 불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곤밥도 그랬지만 돼지고기, 쇠고기 한 점도 별미였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동네에서 돼지고기 추렴을 해서 조금씩 나눈 것을 차례에 사용한다.
일년에 몇 번 먹어보는 고기 한 점이 쌀밥과 어울리면 맛 그만이었는데 반을 나눈 상에 그 한 점이 빠지면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추석엔 의, 식이 크게 한번 바뀌는 날이었는데, 꼬마들에겐 새 옷이 바뀌는 날이었다. 옷은 2년쯤 입을 수 있게 바짓단을 넉넉하게 해서 말아 올리고 다녔다. 어차피 맞는 옷이 보기도 좋고, 키가 빨리 컸으니 좋을 듯 했었다.
지금은 그리도 많은 먹 거리가 그 땐 어찌 귀했는지 모른다. 배고프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언제부터 모르는 사이에 추석이 돼도 먹 거리에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옛말로 하면 잘 살게 된 것이다.
지금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무진장 많아졌지만 옛날엔 추석날 달구경도 큰 구경거리였다.
우리 마을 뒷산은 500미터쯤의 고근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둥그렇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기 위해서 꼬마들은 차례가 끝나면 허위허위 산으로 올라갔다.
어디서나 악동들은 있기 마련이어서 조로의 양쪽의 띠를 잡아매서 고를 만들었다. 말할 것 없이 심드렁하게 걷다가는 그야말로 코 다친다.
내려오는 길에선 하루 종일 먹어서 배설한 배설물을 내지르고 도망가 버렸으니,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 배설물에 손을 탁 짚었던 아이는 다시 발길을 끊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추석하면 풍요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없는 사람도 차례 상 준비에 열을 올리곤 한다. 없는 사람은 항상 서러운 법이지만 넉넉함이 그들에게도 함께 했으면 한다.
제주에서는 올해 태풍이 서너 차례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갔다. 매해마다 두어 차례 태풍의 길목인 제주에서 설움을 겪고는 했다.
추석은 모두에게 너그러운 느낌의 단어다.
예전에 추석이 어린이들에게 먹을 희망으로 다가왔듯이,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희망으로 찾아와 서로 일가친척을 찾아보는 정이 깃드는 추석으로 변해 갔으면 한다.
오 태 익
태영농장주/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