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9월 8일이 음력으론 8월 초하루다.
초하루 전후 한 달을 벌초기간으로 잡고 벌초를 하는 것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다른 지방에서도 추석 때 성묘를 하지만, 제주에서처럼 대대적으로 벌초를 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봉분을 쌓고 돌담을 두르는 매장 중심의 풍습이 벌초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주의 장묘문화도 화장으로 변화되면 벌초의 풍습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놓은 정신적, 물질적인 일체의 성과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기술ㆍ학문ㆍ예술ㆍ도덕ㆍ종교 등 물질적인 문명에 대하여 특히 인간의 내적 정신활동의 소산을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생활 양식이 어떤 연유로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벌초문화도 힘겹게 생각하지만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지난 2000년 이후 제주에도 화장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해마다 제주종합경기장의 주경기장 면적 대비 2.5배에 달하는 면적이 새롭게 농경지로 변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는 보도다.
그렇지만 제주지역 화장율은 2005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52.9%보다 낮은 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기존 묘지가 이장 또는 유골이 화장되는 과정에서 58만 6천 평방미터가 묘지에서 토지로 환원되는 등 토지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했다.
이 같은 현상은 도시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조상의 묘소를 관리하는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고인의 유골을 공설 납골당이나 가족납골묘에 안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화장 문화에 대한 도민의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제주시의 양지공원은 영혼의 편안한 안식처로 인식되고 있다.
지지난해 도내의 화장은 43.1%로 증가되면서 6~7년 후엔 70%가 넘으리라는 보도다.
일반도민 및 양지고원 방문객 2천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에서도 10명 중 7명 이상이 향후 화장할 의사가 있는 등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층의 경우 85%가까이가 화장을 선호한 것으로 집계됐다.
화장 후의 유골 처리 형태를 보면 대부분 가족 납골묘나 공공 납골당 안치이나, 향후 산골, 수목장 등 자연장으로 갔으면 한다.
벌초를 하면서 산야로 돌아다니다 보면 가족이나 문중의 납골묘 또는 납골당이 흉물스럽게 산야의 한 구석을 차지한 것을 볼 수 있다.
해당 묘지 주인들이야 큰 효도나 한 것처럼 생각할 터이지만 그건 아니다 싶다.
화장문화의 확산과 함께 같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화장만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든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길을 잘못 들면 화장 후의 납골묘나 납골당도 처리가 더 어려워질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화장과 바로 연결시켜 납골묘나 납골당을 떠올렸다.
납골묘는 주변환경과 크게 조화롭지 못한 것이 문제다.
가끔 중앙지에서 가족납골묘 특별분양 같은 전면광고를 보게 되는데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석조인 납골묘를 무슨 전시장처럼 일렬로 늘어놓은 것이 보기 좋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호화로운 석조물이 문제가 아니라 반영구적으로 그 자리를 잠식하고 자연을 파괴한다는 데 있다.
제주에서도 가족묘역들이 있는 곳에서 일부 납골묘를 봤지만, 전혀 자연 친화적이지 못한 석조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직은 수목장 (樹木葬)이나 산골(散骨) 같은 자연장(自然葬)이 시도단계이지만 국제자유도시로 가는 마당에 제주의 장묘문화로 알맞지 않을까 한다.
수목장은 시신을 화장해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자연 친화적인 장묘 방식이다.
수년 전 타계한 고려대의 김장수 교수가 처음이었다.
자연장은 화장하고 남은 분골을 그대로 흙과 섞어서 땅에 묻어 모시는 방법이다.
마치 한글날이 되어야 모든 신문에서 하루 한글을 되돌아보듯이, 벌초 철이 되어서야 장묘문화에 대한 의견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장묘문화는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이다.
이제 후손에게만 의존하던 죽음 이후를 스스로 한번쯤 고민해 볼 때가 아닌가.
오 태 익
태영농장주/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