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필자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유명한 관광지 어디를 가든, 늘게 늘어선 줄은 있게 마련이며, 일정 내내 네 다섯군데의 유명 관광지를 다녔다면, 아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족히 하루는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전에는, 나 역시 기다림의 시간이 그리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였다.
어떻게 하면 빨리 갈수 있을지 고민도 해보고,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그냥 포기하기도 일쑤였다.
'기다림'이란 시간의 가치를 나에게 준 것은, 어떤 여행에서였다.
주로 박물관과 유적지를 보게 되었던 그 곳은,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유명한 관광도시였다.
나 역시, 책에서만 봐왔던 그곳들을 간다는 설레임에 들뜬 마음으로 일찍 숙소를 나섰으나, 이미 족히 몇 백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을 보고, 시작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줄을 섰고, 내 앞뒤로는 미국부부, 영국배낭여행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아래에서 나의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갔고, 급기야 박물관을 구경해야한다는 전의를 상실해 갈 때 쯤이였다.
내 앞에 혹은 뒤에 있는 그들은 짜증스런 표정하나 없이, 도리여, 그 박물관에 관한 책자를 보며 이야기를 하거나, 다음 일정을 짜는 등 기다림이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었다.
서로 국적을 물어보는 통성명을 하게 되었을 때, 줄이 너무 길어 피곤하다는 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대답과 함께 이렇게 멋진 곳을 보기 위한 기다림은 도리여 가치롭다고 대답하는 것이였다.
난 바쁘게, 혹은 빠르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사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서두름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먼저 좋은 곳을 본다는 욕심이 지나쳐서 새치기를 하거나,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비일비재한 현상이 아닌가. 좋은곳엔, 그곳을 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게 당연하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미국부부처럼, 기다림은 어쩌면 좋은 곳을 보기위한 당연한 대가일 것이다. 현재 제주는 세계적인 관광도시 및 국제회의유치장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질서 지키기에 대한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단속이라는 방법만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다. 단속이라는 일회성의 방법이 기다림을 가치로운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기다림. 그것은, 좋은 것을 보고 경험 할때, 당연히 따라오는 부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만 바꾼다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질서의식을 가진 시민들로 가득찬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 효 숙
제주동부경찰서 중앙지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