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일요일 신산공원에서 아침운동을 하는데 70대 중반을 훨씬 넘게 보이는 노인들이 가짜 비아그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 TV에서 의사 진단서 없이 파는 비아그라는 먹지 말라고 하던데?” 한 노인의 말하자, 옆에 다른 노인은 “ 그거, 가짜 중국산이야, 잘못 사용하면 심장 발짝으로 제 명에 못가요,”라고 비아냥스럽게 답하는 내용이다. 사람은 나이는 들더라도 성욕은 늙지 않는 모양이다. 인간의 시대를 초월해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한다.
특히 성은 신이 인간에게 준, 인간만이 가지는 특혜 중에 가장 축복받을 특혜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에 대부분의 동물들은 발정기 때만 종족번식을 위해 성 행위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시사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情)에 따라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이다.
특히 부부간의 성행위는 신에게 허락받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즐거움의 하나다.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여자”를 창작한 세계 최고의 프랑스 미술가는 “결혼해서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섹스하기 편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유교적 사상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라는 사회관습의 영향으로 성의 음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성행위 자체가 남편이 부인에게, 또는 남성이 여성에게 베푸는 것으로 잘못 인식된 사회 풍조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지금까지도 부부생활에 남아 있는 잘못된 성문화다. 부부간의 섹스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육체적, 정신적 즐거움을 느끼는 상호적인 것임에도 부인이 남편에게 성관계요구는 터부시(taboo)한다. 성을 즐기려는 것은 마치 화냥기 있는 불륜여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성생활을 피하는 것이 요조숙녀다.
이런 성문화로 인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인의 성욕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여자든 남자든지 간에 노인이 이성에 대해 깊은 눈길을 보내면 대게 ‘주책없다’ 거나 ‘노망났다’ 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노인은 ‘섹스의 세계’에서 은퇴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노인들의 관심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절실할 수 있으며, 이는 독신 노인일수록 더욱 더 그렇다고 한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존슨이란 사회학자는 성행위시, 특히 성적 극치감을 느끼는 순간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 연구를 하였는데, 노인의 성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테면, 사람이 늙어가면서 신체적인 성 반응에도 변화가 일어나지만 중요한 것은 남녀 구별 없이 성적욕구와 성행위는 일생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35세의 잭클린 부인과 결혼했던 79세의 피카소, 20대 여성과 사랑을 나눴던 60세 테너 가수 파바로티, 환갑이 넘은 나이에 딸을 낳았던 영화배우 알랭드롱과 앤서니 퀸 등 노익장을 과시하는 일은 단지 일부 유명 인사들만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이는 건강하고 보람 있는 인생, 특히 직업상의 능력이 노년기에서도 계속되는 사람이 성욕도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물의 생태를 눈여겨보면 생식욕구의 소실은 삶에 대한 의욕이 없음을 뜻하며, 생식기능의 정지는 자연 도태, 즉 머지않아 죽음이 임박했다는 예고와 같은 것이다. 인간도 섹스 포기는 노화와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수도 있다.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안의 벽난로가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the white snow covered the roof of the house has a fireplace does not burn)” 노인의 성을 빗댄 서양의 격언이다. “늦바람이 용마루 벗긴다.”는 우리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흰머리와 주름살과 비례해 욕망이 쇠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인도 자신의 의사에 의해 성생활을 계속하거나 이성교제 및 노혼을 할 신체적 기능과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단순히 ‘노령’ 이라고 하는 연령적 조건에 의해 제약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노인의 성‘ 문제를 노인복지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팽배되어 있는 노혼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탈피다. 옛날 어른들 말에 효자효녀 백 명보다 악처 한 명이 더 낫다는 말이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노인을 탈(脫) 성적 존재’로 보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노인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해 사회는 노인의 성적 권리(性權)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손이 없다고 밥 먹을 권리가 없는 게 아닌 것처럼 노인의 성욕도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인간의 본능이고 삶의 근본이라고 생각해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