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경평축구는 당시 경성중학 주축의 경성팀과 숭실학교 주축의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진데서 기원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기전이 시작된 것은 1933년이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도 계속되었던 경평축구대항전은 해방 후 분단과 함께 1946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2010년 월드컵에 사상 유례없는 남북한 본선 동반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남한은 일찌감치 조 선두를 달리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북한 역시 기적의 8강 진출로 큰 파란을 일으켰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됐다. 첫 동반 진출이라는 민족의 쾌거,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의 눈과 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등장한 두 개의 '코리아'로 향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월드컵에서 남북이 공동응원을 치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핑퐁 외교'가 큰 기여를 했다. 스포츠정신을 살려 적대관계에 놓인 두 진영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물꼬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과 북의 모든 선수를 다 응원하는 공동 응원단을 꾸려, 세계인이 바라보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상대방을 서로 응원한다면 남북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 남과 북이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공동입장을 하면 항상 들었던 깃발이 단일기였고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2005년 8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 남측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남측만 응원했다. 통일축구대회였는데도 그랬다. 당시에는 남측에 북측이 패해서 그랬는지 경기가 끝난 후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북측 선수들은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나라와 국민의 기대를 잔뜩 지고 경기장에 나와 지고도 환하게 웃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이다. 하지만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남과 북의 선수끼리 얼싸안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운동장에서 하나가 되어 정말 마음 놓고 얼싸안아 보자.
그렇게 잔디밭에 쓰러져 뒹굴다가 눈물이라도 펑펑 흘린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수 십년간 갈라져 살던 형제가 만났는데 얼싸 안고 뒹굴고 눈물을 흘린다고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2010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은 해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후 무려 56년만이다.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 보자면 24년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만이다. 하지만 원정 16강에 올랐다고 한국을 축구 선진국이라 말하는 것에는 선을 긋는 전문가가 있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명지대교수다. 한국 축구는 뒤집어서 보면 아주 병색이 완연한 환자가 사진을 찍고 TV에 나오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한 얼굴이라고 일갈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재'는 바로 축구계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기인한다. 이론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결과에 목을 매는 문화"가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른바 '뻥축구'(공만 뻥뻥 걷어차는 축구)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수학에 공식이 있듯 축구에도 원리가 있다. 축구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공부가 절실하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이론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 중에는 당연히 실점할 수 있다. 대신 경기 후 선수와 감독과의 미팅, 혹은 학자들의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문제점을 공부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덧붙일 것이 남북축구를 통하여 통일에 기여한다는 축구인들의 의식전환이다. 축구생산자 집단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누구를 위해서 게임을 하는가. 팬들을 위해, 그들을 감동시키는 최선의 게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는 강해진다. 더 열심히 뛰어서 국민들을 위해 '명품'을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그 명품이야말로 축구를 통한 남북교류가 이루저지고 통일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축구는 예측불허, 대반전, 통쾌한 결말을 지닌 한 편의 스릴러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예측불허이다. '손에 땀을 쥐게한다'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축구의 매력은 남북통일에도 해당된다. 이제 남과 북이 정기전을 통하여 서울과 평양이 축구열기에 휩싸이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통일도 예측불허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