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따스한 지난 주말, 겨우내 무거워진 몸도 풀고 마음도 챙기기 위해 산행을 했다. 우리멤버들이 항상 모여서 출발하는 제주시한라체육관 앞에 모였다. 이번에는 제주시 절물휴양림 장생이 숲길과 사려니 숲길 사이에 새로 개발한 트래킹코스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서는 입구부터 금방 만든 길이다. 잔디와 풀을 걷고 지형을 골라 불편 없는 도보 길을 만들었다. 정말이지 최선의 걷기 코스다. 싱그럽고 신선한 바람, 과년한 여인의 몸매 같이 영근 신록, 나무 숲 아래서 앙증맞게 이슬을 먹고 자란 들꽃, 나무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미풍은 탄성 없이 걸을 수 없는 하모니다.
그런데 내가 이 대자연에 호강하는 것이 너무나 사치스러운 것 같고 죄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천혜의 자연에 나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생긴 문명의 독을 해독하기위해서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루어 오름을 걷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걷기 코스를 만든 것도 그렇고 오름을 보존하기 위해 초록색 칠을 한 철근으로 출입금지 울타리를 만든 것도 그렇고, 더구나 들어가는 입구에 간판, 통재부스를 치장해 놓은 것도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마음의 무겁다. 물론 오름을 보존하고 걷기 코스를 만드는 측에서는 전문기관에 용역을 줘서 최선의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전을 위한 치장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걷기 코스개발도, 너무 과하면 모자람만 못할 수 있다. 이건 나같이 전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리제주지역의 가진 비교우위가치는 자연유산뿐이다. 다른 가치는 지금까지 변방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자연을 보전한다고 지방정부에서, 또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 보조금 예산으로 트래킹 코스도 만들고, 입구도 치장도하고. 버스를 임대해서 오름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제주시 여러 동내공원, 신산공원에는 요즘 한창 가공한 돌로 산책코스를 치장하고 있다. 지금에는 오름 치장도, 공원치장도 과거 새마을운동 버전으로는 안 된다.
지나간 시대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물은 ‘그리스 신화’에서 전해주는 ‘시지프’의 부조리한 영웅의 정열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지프 신화’는 다 아는 얘기지만, 시지프는 신들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지옥에서 산꼭대기로 커다란 바위를 굴려 옮기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바위를 올리면 또다시 바위는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시지프는 아래로 내려가 굴러 덜어진 돌을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시지프에게 주어진 잠깐의 휴식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도 잠깐의 휴식 때문에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고민해야 된다. 우리들은 공기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부조리 한복판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 희망과 삶 그리고 행복을 말하지만, 그것 또한 부조리를 빼어 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 들이다. 우리가 만일 부조리를 인식하려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부조리를 외면하지 말 것인가? 아니면 생을 마감 할 것인 가?” <태양의 후예, 김화영 역, 책세상.>라고 했다.
자연을 보전하기 위한 각종 용역, 환경 영향평가 등은 환경개발에 정당성만 인정해주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money)이 학문(truth)을 구축(拘縮)한다고 믿는 자들의 말이다. 오름과 공원에 일부러 치장을 하고 각종 조형물을 설치한 것은, 더 편리하고 더 보기 좋게 꾸미려는 선의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선의도 지나치면 피로를 부른다. 더욱 곤란한 것은 원색의 훼손이다.
오름이든, 산이든, 사람이든 최대한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최선의 보전이다. 우리들은 자연에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산을 뚫고 밭에 길을 내고, 지역을 치장하는 사업들을 당연시 해왔으나, 태풍 ‘나리’호 내습 후에야, 과학기술에 한계가 있으며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인공(人工)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무지와 오만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권력기관의 보조금예산을 받아내기 위해 가만히 놔두어야할 할 자연을 보전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사는 일에 열중하지만 하는 일마다 죽는 길로 가는 것은,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름, 공원을 정원처럼 꾸미고 강을 어항으로 만드는 일은 모두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는 욕심이다. 시민을 위하고 지역을 위해 한다지만, 위한다는 게 오만이요 독선일 수 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가장 아름다운 일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니 삶도, 산도, 오름도, 공원도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의 보전책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