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우리 지역의 역사(歷史)를 특성화 시켜나가자
[나의 생각] 우리 지역의 역사(歷史)를 특성화 시켜나가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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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반면 환경오염, 질병유발, 운동결핍, 인간소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사회병리적 현상을 초래하여 현대인의 삶의 질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여가활동을 통하여 행복감, 건강유지, 생활만족에 큰 활력소를 주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여가활동은 가족단위의 활동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스포츠, 걷기운동, 문화예술 활동 등 많은 여가활동 중 특히 승마는 최근 레저스포츠 뿐만 아니라 재활승마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마관련 산업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면 경마산업과 승마산업으로 나눌수 있고, 우리나라의 경마산업의 겨우 이미 대중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승마산업의 경우 귀족스포츠로 인식되어 크게 발전하지 못하다가 최근레저산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레저산업 분야로 승마를 즐기는 승마인구는 증가되는 반면에 승마산업에 관련된 제도적 장치 및 인프라 등은 뒷받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ㆍ내외적으로 승마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고 승마대회 개최 등 마관련산업이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제주마의 역사적 사실과 전통을 활용하여 능동적으로 마관련 관광인프라 및 상품을 개발하여 타지역과 차별화, 특성화 해 나가야 한다.

말은 원나라가 목마장을 설치하기 훨씬 이전부터 제주에서 활발히 사육되고 있었는데, 1276년(고려 충렬왕) 원의 목마장 설치 이후에 더욱 확대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16세기말 무렵 목장이 가장 번성했는데, 당시에는 제주를 10개소로 나눠 국마(國馬)목장이 운영되었고, 개인의 사마(私馬)목장도 번성했는데, 이때 전국 160여 개소의 목장 중 제주도의 목장이 가장 유명했다.

16세기 말 무렵 전국의 어느 마목장보다 더 번성한 사마목장을 영한 인물로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이라는 탁월한 목축가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의귀리 사람이었다.

김만일은 뛰어난 목축 능력으로 1만 필 가까운 말을 길렀고, 선조27 년(1594), 선조 33년(1600), 광해군12년(1620), 광해군14년(1622), 인조 5년(1627) 등 국가가 필요한 시점에 최소 1300필이 넘는 말을 바쳤 던바, 그 공로로 인조6년(1628) 종1품(조선시대 18품계 중 2번째. 오 늘날의 부총리급. 조선시대 제주인으로서 가장 높은 관직) 숭정대부 (崇政大夫)까지 제수되었으며,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길이길 이 칭송되었고, 이후 김만일의 후손들도 지역민들과 더불어 218년 동안 산마감목관을 역임하면서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말을 국가에 바침으로써, 말사육을 통한 나라 사랑을 실천했으며, 의귀리는 국가에 대한 기여 및 사회적 성취를 이룬 마을로서 ‘제주 마의 본향‘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마문화의 유산을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원으로 유지 보존함과 동시에 이를 관광 자원화 함으로써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변화 속에서 제주도의 자연 생태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부각 시키고 환경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감으로써 주민의 소득 창출은 물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마을의 발전을 실현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  상  철
서귀포시 남원읍사무소 지역특화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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