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미달되지 않는 수준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통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이런 면은 좋고 이런 면은 나쁘다는 식으로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려고 노력한다. 한가지 선입견만 갖고 판단을 하다보면 남들과 다른 잘못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경제에 큰 기여를 한 기업으로 찬사를 받는가 하면 비자금을 조성하고 소위 떡값 검사에게 뇌물이나 주는 기업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삼성에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책을 내 삼성을 비리를 재차 고발하는 것을 보고 삼성에 나쁜 감정을 갖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일수록 충분한 양식을 갖고 쓴 책인지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자동차 사업에서 1년만에 계수상으로 3조 70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사업을 유지하기위해 그룹내 계열사에서 인력과 자금, 시설 등을 부당으로 지원한 금액까지 합치면 손실은 더 커진다고 한다.
미국의 망해가는 컴퓨터 회사를 인수했다가 1조원이 넘는 손해를 본 끝에 손실 처리한 적도 있다. 명품 시계사업을 하겠다며 유럽 회사를 실사도 거치지 않고 인수하는가 하면 1000억원에 인수한 이 회사를 결국 단돈 100만원에 되팔았다는 믿기지 않는 내용도 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가 벤처기업에 1500억원을 투자했다가 망하게 되자 계열사들이 관련 주식을 사서 손해를 메꾸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업계에서는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기업은 투자를 하다보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 할 수도 있다. 삼성의 반도체, 휴대폰 사업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매출을 자랑하며 삼성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것은 적절한 투자가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투자 실패 사례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 할 일은 아니다. 특정인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전문가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신중하게 투자가 이뤄졌는지 따져야 하는데 저자는 삼성에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변호사는 또 삼성 계열사의 투자결정이나 비자금을 포함한 각종 자금의 사용 방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계열사에서는 망해가는 사업인 줄 알면서도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투자를 할 수 밖에 없고, 법적으로는 엄연히 별개의 회사인데도 회계 장부 조작을 통해 다른 회사에 돈을 쏟아 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사회도 거치지 않고 자금을 집행하고, 문제가 되면 회의 서류를 조작하는 것은 물론 이사회가 열렸던 것처럼 관련자들이 모두 입을 맞추는 연습까지 해 정부기관과 주주들을 속여 왔다고 한다.
김변호사가 이런 주장을 양심선언을 통해 밝혔고 수사까지 이뤄졌지만 상당수 주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삼성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검찰도 사실 무근 또는 해외 법인과 관련이 돼 조사하기 힘들다며 넘어갔다. 삼성과 검찰의 주장이 부디 맞는 말이기를 기대해 본다.
또하나 답답한 것은 비자금이 주로 삼성일가의 사적 용도나 뇌물로 사용됐다는 부분이다. 김변호사는 삼성 관계자가 법관에게 30억원을 뇌물로 주려고 시도했다고 적시했다.
30억원을 실제 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 국세청, 정치인, 언론인 등에게 수천에서 수억원의 돈이 수시로 건네지고(언론인들에게는 가장 적은 돈을 줬다고 한다) 이 돈의 영향으로 삼성이 각종 범죄 조사에서 무죄를 받고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제인들에게 구속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더라도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을 참작해 감형해 주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재무재표나 회계서류를 거의 믿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이 삼성탓 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인들이 나라를 위해 힘쓴 정상을 참작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탓하지는 않겠다.
힘을 가진 자의 특권 행사는 대개 무한한 정당성을 가지니까. 다만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는 부끄러운 일을 겪은 뒤 이제는 삼성이 뇌물이나 비자금의 관행을 벗어 버렸나 하는 점이 궁금할 뿐이다.
삼성은 새롭게 변하겠다고 수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따가운 충고를 약으로 받아 들여 요즘 광고 카피처럼 삼성도 안녕하고 국민도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 종 현
기획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