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경계인 체험으로 역사는 생동한다
[세평시평] 경계인 체험으로 역사는 생동한다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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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은 그의 장편소설 『광장』에서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더미만 쌓였어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라고 쓰고 있다. 밀실과 광장의 필요성을 말하던 주인공 이명준은 결국 제3국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만약 우리가 이명준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그리고 지금의 이명준은 어떤 길을 갈까.

‘경계인’(境界人)은 ‘남’과 ‘북’, 한민족으로서 갈라진 두 사회 체제를 이어 줄 접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한민족의 매개인’이라는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남과 북, 그 어느 것에도 완전하게 소속될 수 없는 자이다. 경계인의 생활체험은 독자적인 가치관·감수성을 키우며, 우수하고 창조적인 의의를 가져오는 수가 있어 예술가·사상가·학자 등이 배출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제주출신 경계인 김시종 시인과 송두율 교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은 1949년 6월 제주4·3의 악몽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탈출한다. 그렇지만 그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시대를 경계의 벽으로 허무는 문학을 소통의 매개이자 희망으로 삼았다. 그는 제주4·3의 상처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얼굴로, 그렇게 일본에서의 삶 속에서 격렬하게 근현대사를 이끌어 갔다.

“길들여 익숙해진 재일에 머무는 자족으로부터/ 이방인인 내가 나를 벗어나/ 도달하는 나라의 대립 틈새를 거슬러 갔다 오기로 하자// 그렇다, 이젠 돌아가리/ 노을빛 그윽이 저무는 나이/ 두고 온 기억의 품으로 늙은 아내와 돌아가리 ”(<돌아가리> 부분)

“사전에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내 표현 중에 가끔 '조선'이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건 남북을 통한 총체어로서의 '조선'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재일작가 김시종 '나의 문학 나의 고향' 첫 글)

송두율 교수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일컬었다. 1994년 10월에 그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강의할 때였다. 독일인 동료들이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너의 머리 속에는 칸트나 헤겔과 한국이 공존하는데 힘든 노릇이 아니냐?” 이에 대해서 송 교수는 이렇게 답하였다: “어려워도 할 수 없지 않느냐, 그것이 한국과 유럽 사이의 경계인의 숙명이 아니냐”(송두율, “연보/ 처음 그려보는 자화상,” 역사는 끝났는가, 당대, 1995, 377-8).

그가 평생 부여잡은 화두들은 ‘경계’라는 개념에 직접 맞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남과 북의 경계, 철학과 사회과학의 경계, 동과 서의 경계, 현대와 탈현대의 경계…. 2000년에 벌어진 그의 귀국 좌절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경계도시>(감독 강석필)였다.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탓에 경계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2003년 9월 귀국, 2003년 10월 구속, 2004년 1심 징역 7년, 2004년 7월 2심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2008년 대법원의 판결까지. 오랫동안 끌어온 송두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21세기 우리들은, 김시종과 송두율의 경계인 체험에 동참할 수 있을까? 그들의 고난이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상징하는 한 지표로서 우뚝 설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기여할 한 진정한 접점으로서,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계인'은 기존의 경계선을 허문다. '경계인'은 이쪽과 저쪽이 모두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경계선의 틈을 열어 서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는데 경계인이 존재한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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