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이제는 우리도 품위 있는 선진국 시민
[나의 생각] 이제는 우리도 품위 있는 선진국 시민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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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고생이 된 딸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부부는 일명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어 아이 아빠가 광주에서 근무를 하고 나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유치장에 여자 피의자를 입감 할 때는 경찰서 내 여경들이 순번을 정하여 여자 피의자 신체검색을 하여 입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피의자 검색 당번일 날 새벽 1시경 여자 피의자가 있으니 검색을 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아이들을 집에 두고 갈 수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경찰서 유치장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그때 딸아이의 눈에는 유치장이 정말 무서운 곳이고, 그 곳을 들어갔다가 나오는 엄마는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며칠 후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을 때이다. 딸아이는 큰일을 겪고 난 사람처럼 할머니에게 “할머니 우리 엄마 무섭지 않아. 엄마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우리 엄마 쇠가 이렇게(위 아래로) 이렇게 생긴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어, 엄마가 거기서 근무한데...”
그 탓이었는지 아니면 바쁜 엄마라는 낙인 탓인지 아이들이 장래 희망을 이야기 할 때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듯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경찰관의 모습은 왠지 무서운 존재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파출소나 지구대의 현주소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듯 하다.
나는 요즘 현장지도방문이라는 테마로 파출소나 지구대를 방문하고 나올 때마다 나 스스로를 향한 답답함과 파출소 직원에 대한 미안함에서 우리 경찰관의 현 주소를 느낀다.
술에 만취하여 파출소나 지구대에서 술주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상대하며 피곤에 찌들어 있는 경찰관들을 보면서 느끼는 나의 마음이다.

딸아이의 눈에 비춰졌던 무서운 경찰관은 온 데 간 데 없고 어쩌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까 고심하며 음주 만취자에 매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술주정에 또 그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전전 긍긍하고 있는 것이 경찰관의 모습이다.

지구대나 파출소의 경찰관은 지구대 안에서 주취자가 다치지 않을까 그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그 시간 범죄예방을 위해 순찰을 나가든 경찰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고출동을 나가는 것이 경찰관 본연의 일인 것이다.
오늘 어느 신문보도에서 “왜 대한민국 파출소만이 취객에 점령됐을까, 취객은 왕 경찰은 봉...”이라는 기사를 보고 아쉬움과 답답함은 더해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품위 있는 선진국 시민이다.
이제 취객 보호는 약방에 감초 격으로 나서야 하는 파출소나 지구대 경찰관, 비전문적(취객에)이고 다른 할일이 잔뜩 쌓여 있는 경찰관이 아니라, 미국의 주취해소센터와 같은 전문적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취객의 격리 보호와 치료, 상담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야 할 때라 생각한다.

고  승  희
제주서부경찰서 수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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