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부처님 오신 날
[세평시평] 부처님 오신 날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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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이다. 자비와 광명을 온 누리에 베풀어주시기 위해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 이다. 나도 불자라고 떳떳이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신도이지만 오늘만은 경건하고 자비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심어 봤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나 같은 범인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심성으로 깨친다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만이라도 부처님의 자비를 생각해보자 것이다. 부처님을 한자로 불(佛)이라고 쓴다. 한자의 불(佛)은 원래 ‘아니다’라는 듯을 지닌 문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가리키는 불(佛)은 사람인자 변이면서 아니다 라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어서 사람의 아닌 (not person)존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부처나 불(佛, 불타)이라는 말은 고대인도의 산스크리트어(語)에서 온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 참뜻은 ‘눈 뜬 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불심이란 곧 ‘눈 뜬 자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이해를 해도 영 틀린 생각은 아니다.

내가 아침운동을 다니는 사라봉 어귀에 절간(소림사)에도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사라봉 길 가로수에 연등이 내걸린다.

이 연등은 낮이면 싱그럽고 완숙한 여인의 몸매와 같은 5월의 신록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색의 풍경은 부서지는 봄볕과 하모니가 되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밤이면 무명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 세속의 어두운 번뇌를 밝혀주는 아름다움을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부처님 오신 날은 연등으로 풍진 거리를 조성하며 또 도량 내에서도 무료정심에 화려한 리본 등으로 흥겨운 축제(festival)가 되고 있다.

 나의 좁은 상식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부처님의 자비정신과는 거리가 있는 기념행사 인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세속의 어려운 곳, 외로운 곳,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데 의미를 찾아야 되지 않을까?

일방적으로 말한다면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고, 아픈 자에게 약을 주고. 죽어가는 생명에게는 생명을 구해 주는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布施)이다. 보시의미에 맞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바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 같아서 조심스럽다.

석가여래의 깊은 진리와 큰뜻의 자비를 우리네 범인의 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선각자(先覺者)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그의 깨달음을 어찌 밝혀 볼 수 있으랴,

그러기에 깨달음이란 나에게는 영원한 미답의 경지로 남아있어서, 미오(迷悟)인 나에게는 이렇게 남아 있음이 오히려 미래의 여지가 있어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 같이 속 좁은 범인들을 위해서, 세사에 도움을 주는 실사구시(實事求是)종교는 문명을 해독하는 청량제다. 그래서 불심을 갈고 닦아 제세구도(濟世求道 )의 길을 정비하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의 구도(求道)다.

요즘 불교와 정치권에서 힘겨루기 논쟁이 한창이다. 요즘 신문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 불교. 좌파승려, 우파스님, 정치공작, 썩은 불교 등등 말이 많다. 걸핏하면 벌어지는 종정다툼이나 잿밥싸움은 이제 청산해야한다.

얼마 전에 열반하신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청청수행은 사바세계 범인들의 가슴을 녹이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자비의 그늘이었다.

불가에서는 온 세상을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한다. 형상과 색체를 가지고 직관적 감각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物質)는 결국 “공(空)”에 불과 하다는 말이다.

공즉공(空卽空)아니고 색즉색(色卽色)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집착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것일 수 있다는 의미리라,

지금 우리들에게 비쳐지고 있는 다투는 불교를 보는 눈은 결코 곱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눈 뜬 자(스님)는 가르치지는 않고 자기들끼리 다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속세정화가 우선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문자를 모르는 문맹자(文盲者)는 거의 없으나 자신의 삶을 읽지 못하는 생맹자(生盲者)는 많다고 한다.

 아무튼 오늘 석가 탄신일을 맞아 부처님의 고행을 생각해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날이었으면 한다. 삶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순간순간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언젠가 자기 차례가 되면 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진짜로 두려워 할 것은 삶을 읽지 못하는 자신의 삶이다. 그래서 오늘만은 나의 속 좁고 욕심 많은 탓으로 지은 죄를 빌면서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무엇이든지 하지 말 것을 결심해본다.

소유하지 말고, 남 앞에 나서지 말고, 일을 벌이지 말고, 삼색(물욕, 성욕, 명예욕)을 좇지 말아서 아주 담백한 생각과 아주 단순한 삶으로 남은여생을 마칠 수는 없는가를 생각해 본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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