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과시용 이력 화려
명나라 무종(武宗.1491~1521) 주후조(朱厚照)는 불과 열다섯 나이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 역사는 그를 환락에 빠져 나라를 장난쳤던 황당한 황제로 기록하고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누리는 황제이면서 자기 자신을 대장군으로, 진국공(鎭國公)으로, 태사(太師)로 봉하고 자신(황제)의 이름으로 자신(대장군 등)에게 녹(祿)까지 내리는 웃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왜 뜬금없는 ‘황당 황제’ 이야기인가. 최근 6.2 지방선거를 앞둬 거리에서 뿌려지는 예비후보자들의 ‘명함’이 연상되어서다.
명함으로 본 도의원, 교육의원, 도지사 출마 희망자들의 이력은 화려하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촘촘히 적은 학력에다 학교동기회 회장이나 친목회 모임회장까지 빼곡하게 나열한 경력사항은 읽어 내려가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명함이 아무리 ‘자기소개용‘을 뛰어넘어 정치적 ’자기과시용‘으로 변질 됐다고 해도 줄줄이 횡대로 늘어선 쭈뼛 쭈뼛 활자들을 보노라면 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썩소(썩은 웃음)가 이런 것인가.
스스로에게 벼슬직함을 내려 자기과시를 했던 명나라 무종이 살아와 봤어도 ‘놀라 자빠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더욱 그렇다.
아직도 연고주의 집착
한 사람의 이력이나 경력 사항은 능력이나 자질을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력이나 경력으로 짜 올린 인적 네트워크를 표로 연결시키겠다는 공직후보들의 ‘명함공세’는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신상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으로 짜여 진 연고주의가 정상적인 선거의 흐름을 왜곡시킨다면 곤란한 일이다. 연고주의에는 냉철한 이성이 개입할 여지를 그만큼 줄여버린다. 감성적 편 가르기가 이성적 판단을 압도해버린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다면 그에게서 정상적 공직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그의 공직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인연의 끈이 그를 옭아맬 것이어서 그렇다.
6.2 지방선거가 ‘명함 선거’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화려한 이력이나 찬란한 경력은 개인의 자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공적 기여를 담보하는 자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함 선거’의 명암이 여기에 있다.
명함 속에 찍힌 각 후보자들의 면면은 훌륭하다. 제주도에 이렇게 훌륭한 인물들이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라게 한다. 충분히 도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지역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이는 명함으로 포장된 화려한 가면일 뿐이다. 가면을 벗기면 어떤 실체가 드러날지 아무도 모른다.
철저한 후보 검증 필요
그러기에 양파 껍질을 벗기듯 후보자들의 면면을 밝히는 검증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정책공약이나 정책 대결을 통해 능력과 자질을 검증해야 한다.
도덕성의 문제, 책임감과 신뢰성, 누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탐욕을 부리는지 등등을 샅샅이 스크린 해야 한다.
명함은 이러한 검증 작업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행적은 이들 검증작업의 거울이 되고 저울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유력 공직 예비후보자들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전국적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만 해 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지나친 욕심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6.2선거에 임하는 제주도민들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 질수밖에 없다. 전국적 비웃음이나 조롱거리로 손가락을 받을 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선택했다는 말은 들을지에 대한 선택이 도민에게 있는 것이다.
까마귀는 다른 새들의 떨어뜨리고 간 화려한 깃털을 주어모아 치장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깃털을 기준으로 뽑히는 ‘새들의 왕’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바람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의 가짜 깃털은 빠지고 까만 실체가 드러났다. 이솝 우화 한 토막이다.
깨어있는 유권자라면, 의식 있는 도민이라면 눈속임으로 치장한 까마귀 같은 후보자를 뽑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