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고통을 푸는 생각
[세평시평] 고통을 푸는 생각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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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즐거울 때보다는 힘겨울 때가 점점 많아진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나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려보고 그래도 힘들면 집에 있는 책에서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고통해소’의 실마리를 찾는다. 삶이 너무 힘겨울 때에는 ‘생쥐와 개구리’ 이야기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이 스토리라인은 이렇다. 생쥐와 개구리가 이웃에 살고 있었다.

개구리는 쥐가 항상 자기보다 멀리 다니며 먹이를 많이 차지하는 게 불만이어서 언젠가는 혼내 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 날 개구리는 쥐에게 친구가 돼 함께 다니자며 둘의 발목을 조금 긴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한 동안 둘은 들판을 사이좋게 다니기도 했지만 마침내 연못에 다다랐을 때 개구리가 물에 뛰어 들었다. 생쥐는 헤엄을 못 친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골탕을 먹이기로 작정한 개구리는 헤엄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익사한 생쥐가 물에 뜨게 되자 멀리서 먹이를 노리던 독수리가 그것을 낚아챘다. 개구리는 물속으로 숨으려 했지만 묶인 발목 대문에 생쥐에게 매달려 공중으로 올려 졌고 마침내 독수리 밥이 되고 말았다. 이 동화는 이솝우화에 불과 하지만 이 우화는 여러 가지 우의(友誼)를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교훈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많은 꼼수들이 잔꾀로 경쟁의 상대를 곤궁에 빠뜨리려하다가는 바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더 큰 화를 당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게 삶의여정이고 이래서 삶은 공평한 것이다.

 삶은 공평하다는 생각에 미치면 나는 ‘고통해소’에 도움이 된다. 그다음 고통을 푸는 방법은 집에 있는 책 가운데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해소’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극한 상항 속에서 고독과 고통을 묘사하는 시문이나 산문을 해석한 책들이 많다. 다산과 더불어 19세기 초를 대표하는 남인계(南人系) 문인인 이학규(李學逵·1770~1834)라는 선비의 시문이다.<안대희 저, 고전산문 산책, 휴머니스트> 불행한 삶과 마음의 가난한 자의 내면을 담백하게 고백하는 서민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시문이다.

이 시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고통을 푸는 방법(憂解八則)>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시름과 고민, 걱정과 질병이라는 여덟 가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열거하고 그때마다 그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더 고통스러운 장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추울 때에는 가난한 집 아이를, 더울 때에는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배가 고플 때에는 구걸하는 거지를, 목이 마를 때에는 소금을 갈망하는 사람을, 수심이 찾을 때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번민이 찾아 들 때에는 순장(殉葬)을 당하는 사람을,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생각해 보라”라는 시문이다. 나에게 슬며시 다가오는 근심과 고통의 절반은 ‘시름과 고민’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 무엇인가를 이루고자하는 ‘나의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더욱더 열망한다. 그래서 오늘도 생쥐와 개구리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를 견제하는 모든 것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고 마음을 달래본다. 이런 말을 하는 내 속 좁은 생각이 부끄럽고 창피하다. 원죄는 나의 욕망인데 상대를 붙잡아 마음에 평온을 찾으려는 나의 생각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자신의 하기 나름이지만 삶의 뿌리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 해진다. 그래서 생각은 생의 원천이고 기반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다.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생각, 즉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다. 고은 시인의 생각에 대한 독백이다. “생각으로/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 있다면/ 갓난아이로 돌아가/ 어머니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돌아 서지 말아야겠지./ ……” 이 시인의 감성만큼이나 삶보다 생각이 우선이라고 속절없는 생각을 해본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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