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한 선거판 마타도어
말들이 많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말이 아니다. 거의가 부끄럽고 악취풍기는 험담(險談)이다. 6.2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에 대한 흠구덕이다.
사실을 근거로 한 것도 있고 단지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는 유언비어 성격의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이미지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퍼스넬리티에는 심각한 상처다.
하나는 특정 여성과의 부적절한 사생활 문제다. ‘실컷 부려먹다가 신의를 저버린 냉혹함’에 대한 비난도 따라다닌다. 다른 하나는 ‘삼성생명주식 차명계좌 보유’와 관련한 거짓말과 말 바꾸기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본인은 여성문제 등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것에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괴 소문은 100% 거짓이고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큰 수술을 받아서 투병중인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거짓으로 흘린 ‘악어의 눈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70줄 노신사’의 눈물샘까지 자극하는 선거판의 악랄한 마타도어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추방해야 할 일이다. 더불어 살아야 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적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부정할수록 커지는 괴 소문
괴 소문은 “아니”라고 부정할수록 더 사실인양 새끼 치며 점점 퍼지는 속성이 있다. 언어학자 ‘조지레이코프’는 ‘코끼리 이론’으로 이를 설명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우선 코끼리부터 생각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니라고 강조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더 강하게 사실인양 각인되는 현상이다. 우리 속담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연상이나 다름없다.
현씨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본인으로선 정말 펄쩍뛰고 환장 할 노릇이다. 그러나 이러한 괴 소문이 ‘신뢰성 상실’ 등 본인의 잘못된 처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거짓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현씨는 2006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TV토론에서 ‘삼성주식 차명계좌 설’을 강력하게 부인했었다. 그러다가 법적 조치가 가해지자 ‘차명계좌 사실’을 시인했다. 제주도민에게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했었고 도민을 우롱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사생활 관련 괴 소문이 사그라 지지 않는 이유도 이로 인한 ‘불신의 덫’에 걸렸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들통 나야 마지못해 시인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잘못은 용서 할 수 있어도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투병 아내에게 돌아가야
그러기에 현씨의 도지사 출마에 말이 많은 것이다. 여론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2008년 4월 10일, ‘삼성생명주식 차명계좌 보유‘를 시인하고 이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당시 4·9 총선 참패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한나라당 도당 위원장직을 사퇴했던 그였다.
그러면서 “자연인으로 백의종군하여 제주발전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고 했었다. 그랬다가 이번에는 “지지자들 요구에 책임감을 느껴 도지사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출마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지나친 말장난이고 비겁한 책임회피다. 지난 4년 간 제주발전을 위해 무얼 했는지. 도의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은 해소됐는지. 서울에 눌러 앉았다가 선거 때가 되자 내려와 “표를 달라”고 할 염치는 있는지. 경륜이 몰염치가 되고 경험이 도덕적 결함을 덮는 도구로 악용되어서는 곤란하다.
노욕(老慾)과 노추(老醜)는 한손에 든 짝패다. “투병중인 아내를 돌보기 위해 모든 유혹과 욕심을 접었다”고 불출마 선언을 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황혼의 빛이었겠는가.
아픈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남편의 아름다운 말년의 동반은 지금도 늦지 않을 터이다. 그런 순애보(純愛譜)가 도지사 권력보다 백배 천배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지자들도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존경한다면 그가 말했듯이 ‘저질 선거판’에서 벗어나도록하여 투병중인 아내에게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그의 경륜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조선시대 문인 신흠(申欽)은 ‘오동나무는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갈무리 하고(梧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평생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노래했었다. 오동나무의 품격과 매화 같은 향기로운 노년을 그에게서 보고 싶은 것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