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빨갱이’라는 유령
[세평시평] ‘빨갱이’라는 유령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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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으로 도내 관광을 다녀왔다. 마지막 코스로 제주4·3편화공원을 찾았다. 동창들 중에는 제주4·3당시 부모를 잃거나 친족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십여 명이 넘었다. 소위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온 동무들이다.

그들을 행방불명임 표석이 세워진 장소로 안내했다.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표석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은 동창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다시 제주4·3평화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조선인민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아들들이다…모든 애국 동포들이여! 조선인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짓을 거부하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여순사건 당시 제주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성명서 내용 중 일부이다.

제주4·3을 진압하기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을 시작으로 ‘여순사건’(1948년)은 시작되었다. 아직도 우리 겨레의 가슴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지만, 여순사건은 제주4·3과 그 뿌리가 닿아있다. 고립무원의 섬에 갇힌 제주 민중을 지지하고, 통일조국을 염원하면서 일으킨 의거란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최초 봉기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일반병사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14연대 병사들이 동참했고, 지역민중들이 함께 깃발을 들었다.

항쟁은 삽시간에 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곡성 등 전남 동부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민중의 뿌리는 제주에서처럼 고립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화두로 등장한 ‘빨갱이’. <’빨갱이’의 탄생>(김득중·선인·2009)이라는 책이 최근 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순사건과 이승만 반공국가의 탄생을 다룬 학술서적이다. 지은이는 여순사건을 통해 한국의 ‘빨갱이’ 탄생을 재조명하고 반공국가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운동이나 민족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지칭하였고,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빨갱이’. 가슴이 떨리고 내려앉는 단어이다.

61년 전에는 그 어떤 전염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 ‘빨갱이’가 아니였을까? 이 병에 걸리면 100% 목숨을 잃고 가족과 친척까지 굴비처럼 엮여서 깊은 산골짜기나 바다에서 총에 맞아 죽어갔다. 삼대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랜 세월동안 ‘붉은 딱지’를 달고 살면서 국가로부터 연좌제로 옥죄어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이 지독한 ‘빨갱이’라는 전염병이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기에 ‘비국민’인 ‘빨갱이’는 초법적으로 죽음을 당했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세웠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반면 국방부에서 간행한 공식 간행물에는 여순사건을 ‘여수 제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일으킨 군내의 쿠데타’이며 남로당 중앙과 지방 좌익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빨갱이. 남한 사회에서 빨갱이는 일차적인 사회악이며, 심지어 때려 죽여도 죄 될 것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김득중의 <’빨갱이’의 탄생>은 그 빨갱이, 혹은 빨갱이를 만든 세력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60여년 동안 남한의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결론은 “빨갱이는 ‘여순항쟁’이라는 기념비적이고 유혈적인 사건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한 남한의 기득권 세력은 반대 세력인 공산주의자를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 비인간, 같은 하늘 아래 살지 못할 존재’로 만드는 데 여순사건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순사건을 통해 전면적으로 등장한 국가폭력은 빨갱이를 없애기는커녕, 끊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관광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동창들은 제주4·3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며, 초등학교 시절 이승만 생일이 되면 그를 찬양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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