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사는 친한 후배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나이 50대에 금융회사 고참 부장이었는데 그만두었다는 얘기다. 전화 받는 순간 그 후배의 대학생, 고교생 자녀가 떠올랐다. 이런 나의 심정을 아는 듯 이 후배는 큰 목소리로 ‘걱정 마십시오, 입에 풀칠 못하시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 호언 뒤편에는 각박한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전화를 끊을 때 나지막이 들린 한숨소리를 통해 절절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또 며칠 전 설날에 고향으로 내려온 30대 아들과 조카들의 대화와 표정에서 최근 어려워진 회사사정, 그로 인해서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들었다.
요즘 신문지상에서 보도하는 실질 실업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족이 4인 가족이라고 치면 1600만 명이 자신이나 가족의 실업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회도 100%완전 고용은 불가능하며 사회생활은 양지와 음지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OECD국가 중에서 세계 금융위기경제침체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정부가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각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민주화가 안 된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사회중산층이라면 누구도 자식들의 실력에 따라 대학진학을 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대다수 졸업생은 직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요즘 제주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떠도는 논란 중에 새로운 말이 있다. ‘홈리스(home less)라는 말이다. 풀어 말하면 가장의 실업으로 인한 ’결손가정‘이라는 말이다. 가정결손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친지, 친족, 이웃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의 빛과 그림자다.
우리제주에서도 탑동공중화장실, 지하상가, 비워있는 공가 등에서 눈여겨보면 가정결손으로 인한 노숙자들이 있다.
이 들은 선진 외국에서와 같이 일이 싫어서, 아니면 알콜 중독 등으로 자의적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보통가정의 가장들이었으나 각박한 우리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추락된 가장들이다. 앞에서 나에게 직장을 쫓겨났다고 전화한 후배와 같이 알뜰하게 가정을 지키고 있던 성실한 우리나라중견 생활인들이 노숙자 등 사회 최하위 계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 떠도는 유머다.
추락한 남편의 위상을 우스갯말로 표현한 것이다. 노숙인 쉼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 노숙 인에게 ‘어쩌다가 노숙인인이 됐어요?’ 라고 물었다. 30대는 집에서 밥 달라고 했다가 쫓겨났어요. 40대는 반찬이 뭐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50대는 아내가 밖으로 나가기에 어디에 가느냐고 물어본 것밖에 없어요. 60대는 아내가 나가기에 함께 가자고 했다가....... 70대는 글쎄요 왜 쫓겨났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이런 말은 우스갯말이다. 그러나 사회 각박함이 스며있고, 홈리스(가정 붕괴)에 대한 사회풍자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가장 서러운 사람이 결손가정이고, 노숙인들 이다. 국내 노숙인은 2000명이지만 노숙인 비슷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여성 노숙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노숙인의 원인은 실직, 사업실패, 신용불량, 가족해체, 주거 빈곤 등으로 가족해체가정의 주원인은 경제사정 이고 보면, 노숙은 대부분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 ‘홈리스(home less)가 이슈를 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결손가정과 노숙 인을 대신하는 말로 ’홈리스‘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국적불명의 말을 법률용어로 쓸 수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법제처도 법률용어로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이런 용어 때문에 싸울 것이 아니라 사회 각박함을 걱정하고 추락하는 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시책이 절신한 것이다. 이것은 능력 있는 분들과 중앙과 지방정부의 몫이다.
용어는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의 등소평이 가 말한 유명한 말이다. 법률용어가 국어도 좋고 외국어면 어떠랴, 각박해지고 있는 우리사회가 온정과 동반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