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천사’가 그립습니다
떠나신지 1년, ‘감사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떠난 자리에는 아직도 떠나시던 날 한파를 녹였던 감동이 알알이 익어 시린 마음들을 데우고 있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더욱 애틋하고 빈자리가 허전하여 더욱 그리운 이,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생전에 뵈올 기회가 없었고 감히 연(緣)을 엮을 수도 없었던 저로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겸손해 하며 ‘나눔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던 ‘바보 천사’, ‘바보 천사’가 그립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융위기로 각박하고 삭막했던 세상 추위를 사랑의 온기로 녹이고 “많은 사랑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하늘나라 여행길에 오르신 후 1년이 지나는 사이, 당신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뿌리고 떠난 ‘사랑의 씨앗’은 지금도 부지런히 싹을 틔우며 가지를 치고 있습니다.
메말랐던 장기기증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떠나면서 기증한 각막이 거름이 된 것입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지난 한 해 동안 20년을 모았던 기록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쌓아온 장기기증 성과를 1년에 이룩한 셈이지요.
죽어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죽음’이라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끊이질 않는 추모객 발길
장례기간 중 추위를 견디며 3km, 4km씩 줄서서 기다리던 추모 인파 40만여명, 묘소참배객 27만여명, 2009년 장기기증 신청자 21만 여명은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던 ‘김수환 효과’일 것입니다.
선종 1주기인 16일 전후, 경기도 천주교용인 공원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귓불 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들의 발길을 잡아당기고 있을까요.
이승에 남기고 간 티 없으신 사랑의 울림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빙그레, 예의 그 바보 같은 소탈한 웃음이 그리워서겠지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영혼을 울리고 잠자던 마음을 두드리는 마지막 가르침을 되새기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기댈 언덕, 당신이 곁에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든든했었지요.
남을 배려하는 너그러움과 다정다감, 한 없이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었던 겸손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포근했었지요.
그러기에 ‘바보 천사’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진하고 애틋한 것입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지고 삭막하고 끝 모르게 타락해 질수록 새록새록 그리움은 더더욱 깊어 질것입니다.
‘무소유의 소유’ 실천한 삶
법정스님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는 성 요한의 말씀을 인용, “김추기경은 이를 삶속에 옮기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무소유의 소유’ ‘무욕의 삶’을 일깨우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탐욕의 세상’을 향한 경구(警句)로도 쓰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소유욕, 모든 권력을 다 움켜쥐려는 권력욕, 이를 위해 아귀다툼하고 맨 날 편 갈라 진흙탕 싸움질이나 하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로도 차용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 싸움질만 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며 ‘겸손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했던 추기경 선종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주문일수도 있습니다.
‘세종시’다 뭐다하며 상대를 ‘강도‘수준으로 몰아붙이는 질 떨어진 자존심 싸움에 대한 국민적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생전에 ‘남에 대한 배려’를 유언처럼 강조해온 ‘추기경 말씀‘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 아침입니다.
이제는 이승의 무거웠던 짐 내려놓으시고 즐겁고 편안한 하늘나라 여행길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해인수녀의 추모 시처럼 ’평화를 지키는 푸른 별이 되소서‘.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