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시공의 변화는 세모(歲暮)의 벽을 허물고 또 다른 새해를 밝혔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정쩡한 세대, 50대에 종언을 고하고, 이순(耳順)을 맞은 자아(自我). 이순이란 논어의 “六十이 耳順”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나이 육십이면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불현듯 곱씹어 보는 이순의 의미에 잡다한 상념이 충동한다.
이순의 시점에 당도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리라. 과연 이순의 가치를 충족할 수 있을까. 도리에 순종할 수 있을 만큼 덕의를 쌓았는가. 이순이란 현실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추억의 편린들이 투영된다. 아예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이면 좋으련만. 궁박했지만 정겹던 농경사회. 원대한 꿈을 쫒던 산업사회. 회귀할 수 없는 그 시절은 과거되어, 인생사의 뒤안길에 추억으로 묻혔다.
가치를 충족하기엔 자신감 없는 나약함과 자괴감, 혼돈이 뇌리를 채운다.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어떻게 떨어낼꼬. 혼탁의 세태에 찌든 자의적 편견은 어떻고. 공평무사 순리를 지켜낼 소양은 있는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육십의 나이, 엄연한 현실 앞에 내재된 아쉬움과 미련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사회는 남녀양성과 어린이, 청년, 노인 등 각계각층의 연령대가 혼재되어 존재한다. 연령이란 어느 일정시점에 같이 도달한 또래를 말함이다. 또래들이 살아온 세월은 같지만 생활양식과 가치관은 다르다. 같은 연령이라도 생활환경과 학습, 놀이를 통한 가치관 형성과정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지천명, 이순… 연륜(年輪)의 세대적 사명감과 책무, 본분에 부합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이 있을 터. 이순의 세대적 사명감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할줄 아는 그 품성의 연륜, 그것은 아닐까.
어린이와 청년세대는 현실을, 장년, 노년세대는 미래문제를 걱정한다. 인생여정에 이순이 되었으니 이제 노후를 설계할 때도 된 것 같다. 풍요로운 은퇴생활은 얼마의 자산이 필요할까. 최근 한 국내대형증권사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가 관심을 끈다.
일반적으로 노후생활의 유형은 '기본형' '여가형' '복지형' '상속형' 등으로 나뉘는데,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본형과 여가형을 기준으로 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기본적인 생활비 월 150만원, 경조사비 20만원, 의료비 21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외 자동차를 소유하면, 관리비 30만원이 추가된다. 여기까지 비용 230만원이 기본형 월간생활비란다.
여행이나 각종 여가비용 70만원을 추가하면 여가형 생활비는 300만원으로 증가된다고 한다. 이에 부합할 노년세대는 얼마나 될까. 준비된 노년과 준비하지 못한 노년의 노후생활은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서 벌이는 생존경쟁게임의 결과가 아니던가. 하지만, 돈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행복은 내면에 있기에 돈이 아니고 가치관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사물의 이치를 알고 도리에 순응하는 일. 모든 일을 순리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물의 이치를 알고 순리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순의 사명감이 깃든 정도(正道)는 가까워지지 않을까.
문 익 순
제주시 이도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