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르 클레지오와 ‘제주4ㆍ3’
[세평시평] 르 클레지오와 ‘제주4ㆍ3’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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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문학수상자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 Le Clezio)는 ‘살아 있는 최고의 불어권 작가’이다. 그는 유럽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파나마 멕시코 등지를 방랑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2001년 10월 한불작가교류 행사 참석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네 차례 한국을 다녀갔을 뿐만 아니라, 2007년까지는 약 1년 동안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머물기도 했다. 특히 제주도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성산포 터진목을 찾은 그는 제주4ㆍ3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제주문협 회원과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성산일출봉을 보고 있노라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화산섬 마우리티우스의 모른봉이 떠오른다. 똑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4ㆍ3사건 때 민병대에 끌려온 성산 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판 지오(GEO) 2009년 3월호에 제주여행기를 실었다. ‘제주매력에 빠진 르클레지오’란 제목의 한국방문기이다. 그는 제주를 정의하는 키워드로 ‘insularity’란 단어를 선택했다. ‘섬나라 근성’이 아닌 ‘고립’ ‘근원적인 섬의 모습’이란 의미에 가깝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는 제주도와 그의 고향인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와 동질감을 여러모로 느낀 다고 했다. 훗날 제주 관련 내용 소설이나 시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도 했다. 모리셔스 섬에 다녀온 후 두 섬 문인 간 가교역할을 맡고 싶다고도 밝혔다.

특히 프랑스판 지오는 “유목민 작가 르 클레지오는 몇 차례 체류한 한국을 유달리 좋아한다”며 “한국의 가장 남쪽에 있는 제주란 섬에서 그는 우수에 사로잡혔다”라고 제주도를 소개했다. 그가 쓴 제주 여행기는 ‘제주찬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주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다. 그는 이 글에서 하멜의 표류에 대한 상상부터 성산일출봉, 돌하르방, 샤머니즘, 4ㆍ3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제주의 아픔까지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날 냉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바다에서 멱을 감고 자기 조상의 피를 마신 해변에서 논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성산 마을의 한 여인이 경찰에 남편이 끌려가는 것을 봤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몇 달이 지나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의 삶은 고달팠다. 그러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여인은 받아들였다. 경찰은 그가 처형했던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자기 아이처럼 사랑했다. 이 감동적이면서 잔인한 역사, 슬프면서도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철학이 제주의 영혼이다.” 르 클레지오의 제주섬에 대한 아픔은 계속 이어졌다. 2007년부터 제주를 세 번째 방문한 그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과 와흘본향당, 제주4?유적 등을 둘러보고 제주의 인상으로, 첫째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섬이고, 두 번째로는 전통문화를 비롯한 독특한 이야기들이 섬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전통 민속을 보고 끌렸으며, 다양한 돌 문화가 독특했는데 그중 돌하르방이 주민에게 수호신으로 숭배된다는 점이 특히 관심을 끌었고, 김녕사굴은 자연이 이렇게 신비롭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특히 제주4ㆍ3은 대량학살임에도 외국은 물론 한국 내에도 진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진실은 산문적이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나이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다. 그들의 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 제주도가 르 클레지오가 추진하는 모리셔스 섬과의 가교가 시작되고, 실질적으로 문인들이 참여하는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제주문학도 더욱 풍성해지리라 생각한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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