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교수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 강정만 편집국장
  • 승인 200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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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지성으로 대표되는 대학교수들이 하는 선거이기 때문 다른 선거와는 다르게 할 줄 알았지만,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었다.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 때만 되면 쪽박에 쥐 뒤 나들 듯, TV에 출연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다반사인 교수들이 정작 자신들의 총장을 뽑는 선거에서는 한탕 걸진 ‘야바위’가 극성이다. 밥 먹고, 술 먹는 것은 기본인 것 같고, 중상모략과 덮어씌우기 등 이 고장에서 몇 차례 벌어진 지방선거판을 뺨칠 정도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교수님 잘 가르쳐 주십시오”가 우리 주변의 선거꾼들로부터 선거 때 “교수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하는 상황으로 변하리라는 상상은, 비단 풍자적인 것만은 아닐 듯싶다.

오버 랩 되는 모멸적 이미지들

지난 지방선거 후 대학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실을 보면서 대학교수들이나 선거판의 꾼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몇몇 괜찮은 교수들이 있기에 대학에 대한 희망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사람에게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 사방이 캄캄해버리 듯 대학총장 선거를 보면서 대학에 걸었던 기대가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이어 오버 랩 되는 그들에 대한 모멸적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제주대 총장 선거를 둘러싼 소문의 포장을 걷어내고 또 걷어내도, 교수들과 관련해 들려오는 소문은 차마 귀를 씻지 않고는 안 될 정도의 것들이다. “파벌이 가장 많기로는 대학 이상 없다”는 소문과 “일부 기회주의적 교수들이 정치교수라는 닉네임을 달고 산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바이긴 하지만 그 때마다 소문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이번 총장선거는 그런 소문은 사실이었고, 그것이 선거라는 ‘매개체’를 통해 매우 유치하고 불결한 모양으로 교수들에 의해 재생산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데 불과했다.

물론 “이런 선거 행태가 오늘에야 벌어진 일도 아니고 선거라면 필연적인 경쟁이 빚는 조그맣고 한정된 역기능에 불과하다”는 대학 내 일부의 소리가 귀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감가상각을 해 그 얘기를 경청하더라도 이런 대학에서 학생들이 배울 것이라는 게 야합과 인신공격의 난무 속에서 비뚤어진 경쟁 외에는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뿐이다. 사회에 나온 그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살아갈 것이기에, 그 ‘배운 것’의 실험장이 될 이 사회의 미래가 섬뜩하기만 하다. 이런 것들은 결국 3류의 선거문화와 그 속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지도하는 제주지역사회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제주사회는 현재의 패거리주의의 사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은 물으나 마나다.

“내가 아니면…”이 사회의 병폐

이런 대학을 놓고 우리가 전국 대학과의 경쟁력을 갖추고, 욕심을 내 세계와 나란히 경쟁하길 바랐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었다. 뒤늦은 개탄인지 모르나, 작금에 발표되는 높은 청년실업이니, 대기업 취직난이니 하는 것도 이런 대학 속에서는 이미 예정돼 있던 ‘시간표’였던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뿐이다.

세상에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보다는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일 정도이고 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든 하지 않든 지구가 공전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통령도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이 있고, 초등학교 앞 등교 길 교통정리도 내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지천에 깔려 있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총장도 ‘내’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줄을 지어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이 우리 사회를 망치게 하고 있듯, 대학의 총장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엇나간 엘리트주의가 대학 내 ‘선거병’을 만들어 대학을 시장(市場)으로, 노름판으로 내몰고 있다. 교육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면서 지역의 경쟁력일진대, 이러다가는 대학도 제주사회도 함께 망하는 꼴을 보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이 없다. ‘선거에서 이기는 한 수’를 보여주기보다는, “총장은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이 있다”면서 애오라지 ‘지성’이길 고집하며 제자들에게 ‘올바름’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를 오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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