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가짜 삶, 진짜 삶
[세평시평] 가짜 삶, 진짜 삶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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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읽었던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를 며칠 전에 다시 읽어 봤다. 학창시절에 읽을 때와 같이 감명은 없었으나 인생의 단면을 냉철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급관리 부인인 여주인공은 자신의 초라한 삶에 절망하며 불행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자기가 원하던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초청받게 된 상류사회의 파티에서 그녀는 쏟아지는 찬사에 휩싸여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모처럼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인기도 한껏 끌었던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친구에게 빌렸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만다.목걸이 값을 갚기 위해 하녀를 내보내고 싸구려 다락방으로 이사한 후 그녀는 하층계급의 여자들처럼 부엌 쓰레기를 큰길로 내가고 계단에서 힘겨워 쉬면서 물을 길어 올린다.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하는 10년 세월은 여주인공을 드세고 우락부락하고 지독한 여자, 가난에 찌든 늙어버린 단단한 여자로 변하게 한다.잃어버린 목걸이 빚을 다 갚은 후, 고된 일상 속에 틈을 내어 산책을 나간 그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여전히 젊고 매력적인 그 옛 친구(목걸이 주인)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10년 전 돌려준 목걸이가 바뀐 걸 몰랐느냐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유한 친구는 놀란 어조로 말한다.“어머.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그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가짜였어!.”이 여주인공은 가짜 목걸이가 진품인 줄 알고 인생을 허비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파멸되거나 반대로 구원을 얻거나 하는 것이 그렇게 사소한 일 하나로 충분했던 것이다.

보통 인간의 욕망과 허영 때문에 발생한 가짜목걸이를 갚기 위해 10년간이나 고생하며 진짜 삶을 잃어버린 인생이다. 학창시절 20대에 이 글을 읽었을 때는 한 인간의 삶의 부침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에 경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주인공의 다음 행보에 대해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옛 친구는 받은 목걸이 값을 되돌려주었겠지. 그 돈으로 그 여자가 집도, 가구도 다시 장만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을까….

그러나 젊음과 미모가 다 사라진 다음에 돈이 생긴다고 해서 그 여자가 행복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진 것도 같다. 이번에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는 목걸이를 잃은 후에 보여주는 여주인공의 태도가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원하던 삶에서 훨씬 더 멀어지게 되었지만 장바구니를 끼고 물건값을 억척스럽게 깎는 그녀에게서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도 들었다. 말하자면 삶의 현장에 뛰어들게 된 그녀에게서 살아 있는 인간의 체취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진실한 가치는 외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도 허영과 욕망에 들뜬 여주인공의 겉치레뿐인 외관 중시는 가짜 삶과 진짜 삶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우리들의 사소한 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부부는 힘들고 치열했지만 정직하게 살아낸 그 10년 동안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지애를 지니게 된 것은 아닐까.

몰락한 삶의 원인 제공자가 된 아내가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부부는 다른 생각 없이 빚을 갚으려는 같은 목표를 지니고 한마음이 되어 일하던 그때를 역설적으로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전에는 프리즘이 반사해 내는 태양의 빛깔이 시각에 따라 변하듯 같은 글에서도 다른 느낌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미묘한 점이 있다.그러나 가볍고 일회적인 세태 소설을 통해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주인공에 대한 상상의 여지는 상당히 좁은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다시 읽고 재해석해 볼 여지가 별로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즉물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이즈음 홍수처럼 밀려오는 온갖 분야의 실용서나 쉽고 가벼운 책의 기세에 밀려 고전의 힘이 꺾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이성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배금주의에 휩쓸려 심장 없는 자판기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자신과 타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고전은 언제나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해보면 어떨까. 오늘 같은 여유로운 날,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경험은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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