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저 홀로 가는 제주도정
[데스크 칼럼] 저 홀로 가는 제주도정
  • 정흥남
  • 승인 2010.0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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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에 포탄희량(抱炭希凉)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불을 끼고 있으면서 시원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한편에서는 믿음을 주지 못할 행동만 하면서 다른 사람이 믿음을 주기를 바라는 현상을 빗대 쓰이곤 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의 주 관심사는 단연 제주도지사 선거전에 몰리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만을 놓고 볼 때 현직인 김태환 지사의 지지도가 말 그대로 ‘기대이상으로 저조하다’는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가 바로 선거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일반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 온 것 또한 최근의 각종 선거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얼마 전 김 지사는 연초를 맞아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잇따르는 ‘여론지지도 부진’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는 그러면서 이 같은 낮은 여론지지도의 근거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정에서 빚어진 시․군폐지에 따른 후유증과 영리병원 해군기지 한라산케이블카 등으로 이어지는 찬․반 대립문제를 꼽았다.

일면 김 지사의 이 같은 지적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지사의 이런 언급에 대해 한편에선 안이한 상황인식이라는 혹평도 이어졌다.

행정계층구조 개편 효과 별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은 제주의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아닐 수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상징돼 온 자치권을 가졌던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물론 북․남제주군이 한순간에 종막을 고했다.

물론 그 이유는 현재 읍면동과 시․군, 제주도로 이어지는 복잡한 행정계층 구조를 ‘혁신’한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까지 복잡한 행정계층 구조는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고, 대신 제주도에 대한 권력집중만 오히려 강화시켰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행정에 다양성과 자율성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대신 일방성과 복종성, 그리고 획일성이 채워지고 있다.

이에따라 적지 않은 도민들이 현 행정체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출범 후 4번에 이르는 이른바 ‘제도개선 과제’를 추진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제주도는 아예 기초 자치단체 부활문제는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도 금기시 하고 있다.

제주도는 더 나아가 시․군 통합의 문제는 현 정부가 최근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초 자치단체 통폐합 문제와도 틀을 그 궤도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연말 제주도의회가 기초 자치단체 부활문제 등을 검토해 보자며 제안한 용역마저 사전 심사를 통해 부결시켜 버렸다.

정말로 잘된 것은 무엇이고, 정말 개선해야 할 점은 없나하는 것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논의하자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고 있다.

기초자치 논의조차 막아선 안 돼

서귀포 지역에서 식당을 하는 한 주민이 지난해 제주도지사실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이 주민의 하소연인 즉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서 공사를 벌이는 바람에 식당으로 먼지가 날아들어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민은 결국 도 해당부서 관계자들의 설득과 ‘피해저감 약속’을 들은 뒤에야 도청을 빠져 나갔다.

종전 같으면 읍․면에서 해결될 문제인데도 제주도까지 먼 걸음을 한 것이다.

이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사실상 제주도의 사업소로 위상이 추락한 현 행정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든 권력이 제주도로 집중됐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년이 지나면서 곳곳에서 정부의 일방적 정책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분출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나친 권한 집중과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방적 행정행태에 대한 염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의 한 고위 공무원은 제주도정은 정말 도민들을 위해 전력투구 하는데 (세상은)이를 액면그대로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도도하게 이어지는 민의의 흐름은 무엇이며, 또 어디로 가려는지 이를 헤아리려는 모습은 별로 없는 듯하다.

한 제도가 출범한 뒤 4년.

새 제도 시작에 따른 좋은 모습과 잘못된 행태를 한번쯤은 살펴 볼만도 한데, 지금은 갓 출범한 제도의 틀을 공고하게 구축해야 하는 게 급선무라고만 우긴다면 얼마나 많은 도민들이 이에 동조할지 의문이다.

제주도정이 불 섶을 이고 포탄희량의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정  흥  남
부국장/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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