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단기 4343년이다. 같은 숫자가 겹치는 해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자료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서기’를 애용하는 현실을 반영이나 하듯이, 이렇다 할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단기(檀紀)는 분명 우리나라 고유 연호(年號)이다. 조선왕조시대에는 우리의 연호를 쓰지 못하였다. 중국 명(明)·청(淸)의 연호를 써야만 했다. 일제 항쟁기에는 일본 것을 썼다. 광복 후에야 우리의 연호를 떳떳이 상용(常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단기연호도 생각처럼 쉽게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채택한 제헌국회 때만하더라도 ‘단군기원’안(案)을 포함하여, 기미3.1독립운동을 기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원년’안과 ‘서력기원’안이 팽팽하게 맞섰었다. 신중을 기하느라, 무려 50여일의 토론을 거친 끝에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이 당시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속기록에서 살펴보자. “단기연호를 써야하는 첫째 이유는 우리 자손들로 하여금 역사를 잘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뿌리 즉 근본을 알게 하기 위함에서이다. 단기연호는 민족정기를 완전히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단기연호는 드디어 단기4281년 9월25일 ‘연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당당하게 정식 공용연호(公用年號)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단기는 왜 ‘폐기’라는 비운을 맞게 되었을까. 5.16주체에 의해서이다. 그것도 정식 국회가 아닌, 이들 세력의 비상기구였던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단기4294년 12월2일자로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공포하였다.
서기로는 1961년의 일이다. 이들은 개정법률 부칙을 통해 ‘서력기원’을 이듬해인 단기4295년 1월1일부터 시행토록하고, 그동안 단기로 표시하여왔던 모든 공문서는 ‘당해 단기연대에서 2333년을 감(減)하여’ 서력연대로 정정(訂正)하게끔 하였다.
단군기원을 폐지하고 서력기원을 쓰는 것은 ‘국제조류에 맞춘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은 있다하겠다. 그렇지만 우리 본래 연호인 단기가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상은 몹시 아쉬운 일이다. 한때 여러 시민단체에서 ‘단기연호 복원’을 관계당국에 청원하기도 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단기를 흔히 음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음력을 표기할 때, 단기를 함께 쓰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이는 틀린 것이다. 전술(前述)한대로 단기는 양력을 전용하는 우리나라에서의 공용연호였다.
차제에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을 하나 짚어보았으면 한다. 아직도 태세력(太歲曆)으로는 경인년이 아닌 기축년이다. 태세력은 어디까지나 음력이다. 그럼에도 ‘경인년’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되뇌고 있다.
신문·방송 등 언론이 문제다. 음력으로 동짓달 17일을, 벌써 경인년 새해라고 하고 있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경인년은 오는 2월 14일 설날부터가 시작이다.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는 잘못된 관행은 이제 시정되어 마땅하다.
아울러 음력 정초(正初)의 인사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가 아니라, “설 명절 복 많이 받으십시오”로 바뀌어야 한다. 관례처럼 무심코 건네는 말이지만, 이는 이중과세(二重過歲)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것이다.
반만년의 근원(根源)을 알고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할, 단군기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 고유의 것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재료가 얼마나 있는가. ‘유구한 역사’가 제일 아닌가. 일본만하더라도 서기보다는 헤이세이(平成)라는 그들의 연호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단기를 써야한다. 최소한 서기와 병기(倂記)는 할 수 있도록 하자.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