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겨울 아버지
[세평시평] 겨울 아버지
  • 제주타임스
  • 승인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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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매섭다. 추운 겨울일수록 어렵고 힘든 아버지들은 더욱 어려워지는 요즘이다. 요즘 핵가족, 대학입시열풍, 사 교육 등으로 가정에서 아버지가 설자리가 없어진지는 오래 되었다. 가정의 경제권. 재산권 행사에서도 아버지는 제외되어 가고 있다.

아버지들의 위상이 한 30 여 년 전 농경 사회에서는 봄철과 같은 화창한 아버지였다면 요즘은 산업사회를 거치고 능력경쟁사회의 시류에 밀린 요즘 아버지들은 기막힌 사연을 안은 겨울 아버지들이다.

며칠 전에 한 텔레비전 방송에 겨울아버지들이 나왔다. 울고 싶은 사연들로 가득한 아버지들이었다. 한 아버지는 30년 동안이나 청소부라는 아버지 직업을 자녀들에게 속이고 살아왔다고 했다.

자녀들이 창피할까 봐서 그랬다는 것이다. 30년의 비밀을 열리는 순간 아버지가 울고, 자녀들이 울고, 동료 청소원들도 같이 울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존경스럽다는 말은 어려웠다.

참다못한 사회자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자 비로소 아들은 ‘네 그래요. 아버지를 사랑해요,’라고 말 했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 하다고 하면서 울었다.

물론 이 아버지 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가진 아버지들이 많을 것이다. 최근에 신문기사다. 아내와 아들을 외국에 어학연수를 보내고 자식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집착하나로 혼자 고국에서 고생하던 한 기러기 아빠의 기막힌 사연이다. 매달 봉급을 연수비로 송금하고 궁핍한 생활을 참으며 견디었다.

그뿐만 아니다. 외환위기 환율차이로 집까지 처분하여 연수비를 부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서가 우편으로 왔고 아내는 아들의 병역 때문에 외국인과 계약결혼하기 위해서는 이혼서류에 서명하고 호적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러기 아빠는 아내의 배반과 가정의 결손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 했다는 기사 내용이다.

물론 이 케이스는 아내의 비틀어진 가족가치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어머니라면 세상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다 해도 역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한다 해도 그 세상은 일그러진 모습 일 것이다.

요즘 날씨도 무척 춥다. 경제 한파도 겨울아버지들에게는 더없이 추운 마음의 동지섣달이다. 몸과 마음이 추운 요즘에 힘든 경제 상황을 돌이켜 보게 되고 가족부양을 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본다.
중국교포 수필가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에서 주인공의 바라보던 아버지의 뒷모습, 마고자에 쪽빛 두루마기는 아닐지라도, 한없이 크고 강인한 줄만 알았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여린 모습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몰래 삼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시대의 모든 아버지습의 원색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아버지라는 자리를 너무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여겨지는 지난20세기 고난의 시대의 아버지는 강인하고 삶의 대들보였던 것은 분명하다.

아버지란 아들로부터 부정되거나 , 극복돼야 할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의 고전적 비극인 ‘오이디푸스왕’으로부터 전해오는 영원한 문학적 테제(綱領)중의 하나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다. 평생을 부정하고 평생을 피해 다니려 해도 운명처럼 어느 한 순간에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마는 것이 아버지라는 존재일 것이다.

아버지라는 책무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로 가득한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일제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저항시인이자 서정시인인 윤동주는 그의 ‘산울림’이라는 시집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고 했다.

이처럼 아버지는 밤하늘 어둠속으로 걸어가면서 그 뒷모습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존재이다.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한 겨울에 굳세게 견디려 해도 마음속으로 울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진심에서 울어나는 “사랑합니다. 파이팅!” 한마디가 아버지의 비타민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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