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시 쓸 것'
'존재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시 쓸 것'
  • 고안석
  • 승인 2010.0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윤미씨,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제주에서 태어나 문학도의 꿈을 꿨던 강윤미씨(사진)의 <골목의 각질>이란 시가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에 선정됐다.
강씨는 당선소감에서 󰡒시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천성의 덜미는 늘 시에 불들렸다󰡓면서 󰡒이제부터 나의 시들은 누구 말대로 놀라운 관념의 현혹이 아닌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부문은 경쟁이 치열했다.
심사평에서도 그런 치열한 싸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투고자만 모두 700여명, 이중 11명이 최종심사에 진출했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는 모두 11명. 거르고 걸러 5명의 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고심했다.

최종 선정된 작품은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과 이명우의 <붉은 도로>.

이명우씨의 작품인 경우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나 내용이 결핍돼 있다는 점 ▲삶의 체험을 시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부족하고 설명적인 데다 과장이 심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반면 강윤미씨의 <골목의 각질>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가 진정 좋은 시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줬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는 불안한 청춘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골목이라는 구체적 삶의 공간을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라면서 󰡒시는 상식적인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강윤미의 앞날에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시에 사족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더러 있어 아쉬웠다. 시에 사족이 있으면 완결미가 떨어진다. 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는 게 아니라는 점, 침묵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한국시단의 샛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고 조언했다.

<골목의 각질>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